부동자금 800조 과열 조짐 당정(黨政)
'플랜B'로 유동성 흡수 2차 추경 얘기 '쏙'

"작년 말만 해도 올 3~4월에는 우리 경제가 벼랑 끝에 몰릴 줄 알았는데…."

한나라당 정책위원회의 핵심 관계자는 20일 "당초 올 상반기 경기 침체가 극에 달하면서 기업의 파산,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해 2중, 3중의 지원책을 마련했었다"며 "그런데 예상 밖으로 우리 경제가 버텨 내고 있어 오히려 당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때문에 극단적 상황에 대비해 진행해 왔던 '플랜 A'를 접고 '플랜 A'의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는 '플랜 B'를 마련 중"이라고 했다.

여당 정책 관계자들이 검토하고 있는 '플랜 B'의 요체는 지나치게 풀려나간 유동성을 흡수하고, 올 상반기 28조원 규모의 1차 추경에 이어 하반기에 투입하려 했던 2차 추경 계획을 '가변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또 규제 완화를 추진하되 향후 경기 회복기를 대비해 영구 폐지가 아닌 한시적 유예를 택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다.

우선 얼어붙은 자금시장을 녹이기 위해 돈을 쏟아붓다 보니 부동자금의 규모가 800조원으로 불어났다. 이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을 밀어 올리면서 벌써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800조원은 분명히 과잉 유동성"이라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글로벌 유동성이 과포화 상태"라고 말했다.

일단 당·정은 유동성 흡수부터 손발을 재빨리 맞추고 있다. 한나라당 제3정책조정위원회 나성린 부위원장은 "시중 부동자금 흡수를 위해 1년 미만 단기 국채를 발행하는 방안과 5년 이상 장기 투자에 대해서는 세금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정부와 조율 중"이라고 했다. 현재 만기 6개월 미만의 수신 금융상품에 몰려 있는 돈만 약 400조원으로 추정된다. 단기 국채를 발행해 이중 상당 부분을 흡수하고, 또 5년 이상의 장기 투자에 세제 혜택을 줘 단기자금을 장기로 돌리려는 것이다.

한국은행법 개정안도 돈을 흡수하기 위한 개정안으로 변하고 있다. 원래 이 개정안은 한은의 설립 목적에 '금융 안정기능'을 추가, 한은이 경기 진작에 필요한 돈을 시중에 직접 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한은법 개정안에 유동성을 흡수하는 '증권대차(貸借)제도' 도입을 반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증권대차제도란 일반 금융회사가 가지고 있는 국채 등 유가증권을 한은이 빌려 이를 시중에 되팔아 넘쳐나는 유동성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하반기 추가 추경 가능성도 여당 안에서 쏙 들어갔다. 올 초만 해도 사석(私席)에서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하반기에도 10조원대의 추경은 해야 할 것"이라고 했던 한나라당 정책위 고위 관계자도 최근엔 "요즘 분위기론 돈을 더 쓰기는 힘들 것 같다"고 입장을 바꿨다. 윤증현 장관도 추경안 발표시(3월 24일)에는 "2차 추경의 문은 열려 있다"고 했지만 지난 16일 국회에서는 "지금 단계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정부의 규제 개혁도 폐지보다는 '유예'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여권 주류인 진수희 의원은 "최근 총리실에서 투자를 막는 규제에 대해 2년간 유예를 추진하는 것과 같은 조치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이 고위 당·정 협의에서 협의한 다가구 보유자 양도세 중과 폐지 법안 처리에 반발하고 있는 데에는 '부자당(富者黨)' 논란과 함께 이 같은 경제 인식 및 분위기 변화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물론 당·정은 최근의 움직임이 경기 회복 신호로 해석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반응이다. 한나라당 정책위 관계자는 "이제 겨우 돈이 돌기 시작하는 것으로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정책적 방안을 미리 생각해 두자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