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벌써 40대 초반에 접어들었군요.

예전에는 많이 그랬겠다고는 하지만, 지금생각해 보면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아나는지 매일 술독에 빠져 사신 분이었습니다.

이런 집안이 대부분 그렇듯이, 당연히 가정의 생계는 어머니 몫이었지요.

한 대여섯살 즈음, 은행 직원식당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가 늦으막한 저녁에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가져오면,

하루 종일 굶주렸던 누나와 제가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어린 나에게는 그 때 어머니가 일하시던 식당에서 가져오신 그 음식이 얼마나 맛있던지

-특히 카레-지금도 그 맛과 향기가 잊혀지지 않네요.

식당일을 그만 두신후, 집안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셨습니다.

참기름, 밀주 막걸리, 양말장사, 극장앞 암표장수, 연탄 배달 아르바이트 등등, 암표를 팔다

경찰에 적발되서 경찰서 유치장에 계신 어머니를 면회갔다 그냥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청나게

서러워 울던 그때 그시절. 모두 남편 잘 못 만난 죄이겠죠. 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날 어머니가

머리에 무거운 행상을 이고 장사를 나가시면 저는 곱아터진 손가락을 호호 불며

어머니 바지자락을 붙잡고 어머니를 따라 다니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커다란 연탄집게로 양손에 연탄을 두개씩, 저는 새끼줄에 매달린 연탄을 양손에

한개씩 들고 산동네 꼭대기 까지 약 600장을 배달하면, 연탄가게 주인 아저씨가 수고했다고

일당을 주셨었죠. 그 돈으로 어머니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누나와 저에게

고기국을 끓여 주셨지만 어머니는 아무것도 않드셨습니다.

 

그때는 그냥 배가 고프지 않아서 안 드시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연탄을 들고 올라가던 그 퍽퍽한 오르막길, 그 때는 얼마나 추웠던지, 그래서인가,

지금은 왠만한 추위는 추위라고 느끼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상의 아버지는 모두 술만 마시는 사람이고 당연히 생계는 모두 어머니 몫인줄 알았지요.

그리고 사실 저희 주위에는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특히 학년이 올라가면서 부터 세상에는 잘사는 사람도

무지 많구나 하는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친구집에 놀러다니게 되면서 부터라고 해야 되겠네요. 커다란 대문, 현관, 거실, 텔레비젼,

집안에 흐르는 은은한 향내, 멋진 비행기 모형, 책장에 꽂혀 있던 많은 책들,

식탁,우리 어머니와 너무 비교되는 교양있어 보이시는 친구 어머님, 멋진 양복을 입고

퇴근하시는 친구 아버님, 특히 모두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있던 친구 녀석들, 멋드러진

식탁에 차려진 맛깔스런 반찬과 태어나서 처음 보았던 쌀밥, 마치 자그마한 그릇에

소담히 담긴 하얀 쌀밥이 설탕처럼 보여서 선뜻 숟가락이 그릇에 가지 않았던 기억들.

우리집에도 놀러가자는 친구들의 청을 이핑계 저핑계로 땀을 뻘뻘 흘리며

거절하느라 어린나이에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커다란 주인집 대문이 아닌 셋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우리집을 보여주기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조그마한 한방에 식구 4명이 모두 북적거리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정말 창피했습니다.

반찬이라고는 김치밖에 없는 꽁보리밥 식사를 쪼그마한 밥상에서 주저앉아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술에 쩔어 방안에서 술 냄새 풍기며 무능력하게

누워 있는 아버지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와도 짜장면 하나 중국집에서 시켜줄 수 없는 어머니가 너무 싫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저에게 돈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저는 돈이 우리삶에 너무도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직접 체득하며 몸으로 느꼈습니다. 한푼의 돈도 아껴쓰고 근검절약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지만,

저는 동전 한잎도 허투루 쓸 수 없었습니다. 이세상에서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엄연한 현실,

어떻게든 혼자힘으로 이 험한 세파를 헤쳐나가야만 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뼛속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이가 아마 10살 무렵, 국민학교 3학년, 4학년때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신림동 집에서 버스로 약 7정거장 떨어진 봉천동에 있는 중학교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걸어서 통학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차비는 모두 모아두었다가 통장에 저축을 했죠.

튼튼한 다리가 멀쩡하게 있는데, 죽도록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주신

차비가 아까워서 도저히 버스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흑석동에 있는 C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등록금이 너무 버거워 3학년 담임선생님의 모교인 그곳에 성적50%,

추천50% 형식으로 4년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모두 원하던 곳으로 가고 "잘 될거야" 라는 그들의 어색한 인사를 뒤로 한채

돌아오던 그날 왜그리 서럽던지 밤새도록 거리를 걸으며 흐느껴 울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보란듯이 성공하겠다는 각오도

잠시 그 당시 시대상황과 맞물려 "노동자 농민", "기층민중", "도시 빈민" 그리고 "철거난민"이라는 그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아니 바로 20년 동안 그들의 삶을 직접 살아왔기에 학업은 완전히 접어둔채 그들의

척박한 삶에 분노하고, 괴로워하고, 울분을 토로하면서 2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투사와는 맞지 않았던지, 아니면 현실과 적당히 타협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심성이었는지 복학하고

나서는 2년 동안 못했던 공부를 하느라 도서관에서만 틀어박혀 보내게 되었지요.

어느덧 직장을 잡고 사회에 진출하여 나만의 소득을 갖게 되면서 체계적인 인생설계에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고 그러면서 한 여자를 알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였나요? 정말 그 말이 어쩌면 그리 정확하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저와 성장과정이 비슷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을 영등포 집에서 학교까지 차비가 아까워 5정거장을 무조건 걸어다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저보다 훨씬 열악한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집은 그냥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집안이었는데 우리 와이프집은

이미 찢어져 버린 집안이었습니다. 완전히 찢어져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형제들은 형제대로 모두 뿔뿔히 흩어져 버린 상태였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는 연배가 되면서 "회사동기 A는 이번에 결혼 할 때 집에서

전세 8천만원 짜리 해줬대" 부터 시작해서 "그래! B는 아파트 한채 사줬대는데" 등

 여러가지 소리가 들려 왔지만 그것은 저와는 너무나 먼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수 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아니 평생 술만 드신 분께서 저 에게 "니가 아들이고 이제 돈 버니까,

이 아버지 술값 내놔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은 것만 해도 정말 감지덕지 였고

 다행히 몸져 누워서 병환이 없으신 것만 해도 너무 너무 감사했었습니다.

결국은 그동안 직장생활 하면서 모아둔 돈과 회사에서 받은 직원대출을 합쳐서

입주 가능한 전세를 찾다 보니, 지금은 "대부도"로 인해 이름이 조금 알려진

시흥시 정왕동이라는 곳에 17평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되었죠.

 

아무래도 아내와 저는 지금까지 자라온 성장 과정이 비슷하다고는 해도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돈 문제에서만은 서로 완전히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간혹 부부사이에 돈 문제로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돈 문제에 관한한

아내를 저보다 한수 위의 고수로 인정하면서 존경하게 되었고

물론 아내 역시 마찬가지로 저를 스승으로 모실 정도였죠.

우리 가족만의 안락한 보금자리인 집을 장만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 였습니다.

집없는 설움의 전철을 제 자식에게 만은 되풀이 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부의 일생일대의 초미의 관심사는 바로 내집 마련이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외환위기로 인해 IMF가 터졌고 집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는 신문기사를

여러번 읽은 기억이 납니다. 집이 이제는 "소유"의 개념에서 벗어나 선진국 처럼 "거주"의 개념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회사 선배의 이야기도 진지하게 경청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저희 부부는 그런 어려운 내용은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가족과 함께 저녁이나 오손도손 모여서 먹을 수 있는 나만의 집을

그냥 막연하게나마 꿈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언을 구했던 많은 사람들이 반대 했지만

결국은 직장생활 10년동안 모아 놓았던 1억5천과 은행대출 약 5천만원 이렇게

 2억원을 종자돈으로 미분양된 아파트를 하나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에 와서야 그 IMF당시 저평가된 아파트를 발굴해 반드시 제 가치를 찾아갈것이라는

확신하에 과감한 베팅으로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혹 읽곤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그렇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나 혜안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저 학교에 갈 나이가 된 아이들이 학교친구와 방과후에 그냥 자연스럽게

집에 와서 같이 공부하고 뛰어놀수 있는 집이 필요했고,

 

아이들에게 자신들만의 방을 마련해 주고 싶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제가 그당시에 국내정세나 경제흐름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면

그렇게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리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집을 구입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 당시 오로지 집없는 설움하나만은 벗어나고

싶어서 장만했던 그 집이 지금 현재 얼마인지 아시나요.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 되어 버렸습니다.

좋겠다구요. 글쎄요.우리가족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집이 있어

너무 좋은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집값이 엄청나게 올라간 것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 밖에 없는 이들의

내집 마련 꿈이 그 만큼 멀어지게 된 걸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이 세상에 바늘 꼿을 땅하나 없다고 슬퍼하거나 서러워 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도와 줄 사람 하나 없어 험한 세파를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고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나를 낳아주신 부모나 형제자매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패배의식에 젖어 있다면 그토록 나약해진 자기자신을 책망하십시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가족이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 모두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