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떤 구에 A라는 새 구청장이 선출됐다. 활동적인 새 구청장은 임기 내내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벌여 놓았다. 그중에서도 주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일을 많이 추진했는데 달동네를 재개발한다든지 좁은 도로를 넓히고 주택가 안에 들어서 있는 유해 시설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사업주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불편한 교통 여건의 개선을 위해 역세권과 연계한 마을버스 노선망을 재정비하는 등 주민의 불편 해소에 총력을 기울였다. 본인의 임기 중에는 완공을 보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인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경전철도 유치해 왔다. 이처럼 동네가 예전보다 쾌적해지자 기회만 되면 다른 구로 떠나려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계속 살기로 하고 다른 구로 떠났던 주민들도 달라진 주거 환경을 보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집 수요 많아지면 집 주인 덕봐

다른 곳으로 이사 가려는 사람은 적은데, 새로 이사 오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자 전세가 하나 나오면 새로 입주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정도였다. 이렇다 보니 전세금을 조금 더 올려 줄테니 자신의 전셋집을 먼저 구해 달라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세금이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전세금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전세금을 올려주느니 차라리 대출을 받아 집을 사버리자는 사람도 늘기 시작했다. 집을 사려는 수요가 많아지니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집값이 오르지 않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던 집 소유주들은 그동안 오르지 않던 집을 끝까지 팔지 않고 버텼던 자신의 결정을 흐뭇해했다.

그런데 전세 값과 집값이 오르는 와중에 손해를 보는 사람도 늘었다. 있는 재산이라고는 얼마 되지 않는 전세금이 전부이기에 돈을 더 보태 집을 살수도 없고 그나마 수입이 적기 때문에 전세에서 월세로 돌릴 형편도 안 되는 서민들이었다. 또한 새로 집을 사려고 준비해 왔던 사람들도 실질적 피해자다. 그동안 모아 왔던 돈으로는 집을 사기가 턱없이 부족해 내 집 마련 계획을 훗날로 미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소 불편했지만 싼 가격에 전세를 살 수 있었거나 싼 가격에 내 집 마련이 가능했던 과거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A구청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건설족’이니, ‘투기꾼의 앞잡이’니 하면서 서민 주거 여건을 파괴한 주범으로 몰기도 했다.

주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몇 년 동안 밤잠을 줄여가면서 뛰어다녔건만 A구청장에게 돌아온 것은 비난의 화살뿐이었다. 그 혜택을 받은 다수는 침묵하고 손해를 본 소수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그 구와 붙어 있는 다른 구의 B구청장은 상당히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임기 내내 표가 될 만한 자리에 쫓아다니면서 자신의 얼굴 알리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이다. 민원이 들어오더라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말로 그때만 모면해 왔다. 일이 추진되지 않는 것을 항의하러 온 민원인들조차 그의 뛰어난 화술에 넘어가 서울시나 중앙 정부 욕만 했지 B구청장을 성실한 사람인양 생각하고는 했다. 그러나 임기 내내 아무런 개선 사업 하나 변변히 이뤄진 것이 없기 때문에 주거 환경이 하루하루 열악해져 가고 있었다.

자기 동네 집값이 오르지 않고 다른 구의 집값만 오르는 것을 보고 주민들은 자기 동네의 주거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은 모르고 다른 구에는 투기꾼들이 득실거려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주거 환경이 열악한 동네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 일부 집 소유주들은 집을 세를 내주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는 했다. 이에 따라 집 자체도 점점 관리가 되지 않아 낡아졌고 임대료도 오르지 않거나 점점 낮아졌다. 세입자들도 집이 너무 낡았지만 다른 동네보다는 싸기 때문에 나가라고 할까봐 집을 고쳐 달라는 요구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동네는 세월이 갈수록 점점 낡고 살기 불편하게 되어 갔다. 그래도 B구청장은 비난을 받지 않았다. 해 놓은 일도 없지만 큰 잘못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상반된 두 사례를 살펴보면 개발이나 변화는 집 소유주에게 유리하고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은 세입자나 서민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이분법으로만 보면 서민 입장에서는 일을 열심히 한 A구청장은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이고 무위도식한 B구청장은 공무원의 표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상식과 다른 이분법이 생기게 됐을까. 이것은 세상을 상대 가치로만 보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우선 비싼 집과 싼 집의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를 살펴보자. 주거 환경이 가장 좋은 집을 10점이라고 하고 가장 열악한 집을 1점이라고 하고 어떤 마을에 집이 1점부터 10점까지 10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마을에 열 가구가 산다면 누가 10점짜리 집에서 살고 누가 1점짜리 집에서 살아야 할까. 원시시대였다면 그 마을에서 힘이 가장 센 가족들이 10점짜리 집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더 힘이 센 가족이 나타나면 그 집을 폭력을 사용해 빼앗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사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집이 분배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의 과다가 집의 배분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가장 좋은 집은 누구나 살고 싶어 하지만 자본의 과다에 따라 높은 비용을 대고서라도 그 집에 살고자 하는 사람과 높은 주거비용을 대느니 그 비용을 먹을거리 등 다른 곳에 쓰고자 하는 수요로 자연스럽게 나뉘게 된다.

이에 따라 오랜 세월이 지나면 10점짜리 집에는 경제력이 가장 뛰어난 가족이 살게 되고 1점짜리 집에는 경제력이 제일 떨어지는 가족이 살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이때 1점짜리 집이 점점 낡아져 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자 이를 부수고 새로 짓다 보니 5점짜리 집이 됐다. 이 집에는 누가 살게 될 까. 처음에는 당연히 원주인인 경제력이 가장 약했던 가족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돈을 바닥에 깔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사람에게 그 집을 팔고 자신들은 보다 싼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결국 소유한 집의 순위가 경제력의 순위로 재편된 것이다. 그러면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자의든 타의든 경제력이 가장 약한 가족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나가야 했던 것이다. 지역 개발 후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서민이 축출되는 현상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인 시각이다.

지금은 서민도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시대

절대적인 가치에서 위의 사건을 살펴보자. 경제력이 가장 약한 가구가 1점짜리 집에서 살다가 5점짜리 집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가 다시 가장 싼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이때 가장 싼 집은 몇 점짜리 집일까. 1점짜리 집은 이미 멸실됐으므로 2점짜리 집이 가장 싼 집이 된 것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장의 기능에 의해 집의 소유권이 재분배됐다고 하더라도 과거보다는 주거 환경이 나은 집에 살게 된 것이다.

상대적 가치로 보면 세상은 마라톤 시합과 같다. 자신만 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최선을 다해서 뛰기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앞서려면 평균 속도로 뛰면 절대 앞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상대 가치 기준으로 남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자 한다면 남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 개발 등에 의해 양질의 주택이 계속 공급된다면 문제는 다르다. 경제력의 순위가 바뀌지 않더라도 서민에게도 과거보다는 양질의 주택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아파트 값은 많이 올랐다. 그러나 수십 년 전에는 부자들만 아파트에 산다는 인식에 비해 지금은 서민도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의 시각에서만 보면 지역 개발은 서민의 보금자리가 축소되는 부작용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즉 상대적 가치가 아닌 절대적 가치로 보면 지역 개발의 수혜자는 결국 서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