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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는 \'300만원의 기적\' |...남기고싶은 글

2010-09-09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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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는 '300만원의 기적'

 

 

 

77세 조배영(가명) 할아버지 스토리를 들은 것은 탤런트 이정길씨에게서였다. 한 모임에서 만난 이씨는 "희한한 어르신이 있더라"며 사연을 제보해주었다. 이씨는 신용불량자 재기(再起)를 돕는 신용회복위의 홍보대사로 활약 중이다. 어느 날 이씨가 일일 상담원을 맡아 창구에 앉아 있는데 팔순이 다 된 노인이 안 갚아도 될 빚을 굳이 갚겠다며 신용회복 신청을 해왔다는 것이다.

조 할아버지는 몇 번을 사양하다 어렵사리 취재에 응해 주었다. 어눌한 경상도 억양, 젊은 시절 힘깨나 쓰셨을 다부진 체격이었다. 하지만 힘들게 살아온 세월의 흔적은 숨길 수 없었다. 관절염 탓인지 걷는 것이 다소 불편해 보였고 팔목엔 붕대를 감고 있었다.

조 할아버지는 자그만 조경(造景)업체를 운영하다 10여년 전 부도를 냈다. 집이며 승용차며 있는 것 다 처분해 큰 빚은 갚고 금융기관 채무 660만원이 남았다. 가족도 없는 무일푼 노인이 이 정도 빚을 갚지 않고 여생을 보낸다 해서 뭐랄 사람은 없었다. 채권 금융기관들도 사실상 포기한 빚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빚지고는 눈을 못 감겠더라"고 했다. 시간만 충분히 주면 조금씩 갚아나갈 자신도 있었다. 그는 노령연금과 참전용사 수당을 월 17만원 받고 있다. 근력도 괜찮으니 막일이라도 하면 생활비 빼고 매달 몇 만원쯤은 빚 갚는 데 쓸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다. 지금도 그의 오른쪽 종아리엔 앞뒤로 총알이 뚫고 나간 자국이 동전 크기만큼 남아 있다. 제대 후엔 조경 사업으로 돈도 좀 벌었다. 전주~남원 간 도로 가로수는 다 자기가 심은 거라고 할아버지는 자랑했다. 하지만 IMF 여파에다 공사대금을 떼이는 바람에 부도를 내고 말았다.

알거지가 된 후엔 되는 대로 잡일을 하며 입에 풀칠하고 살았다. 몇 년 전 부인마저 세상을 뜨자 사는 게 서글퍼졌다. 하나뿐인 아들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할아버지는 지금 청량리의 노숙인 쉼터에서 기거하고 있다. 그런 혈혈단신 노인이 채권자마저 포기한 빚을 갚겠다고 자청했으니 이정길씨가 놀랄 만도 했다.

남의 돈 떼먹는 편법이 판치는 세상, 조 할아버지는 우직하게 살겠다 하고 있었다. 그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신용회복위 프로그램에는 할아버지처럼 먹고살기 힘든 처지에도 다달이 빚을 갚으며 재기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 수십 만명이 들어와 있다.

이들 중 숨 넘어갈 만큼 사정이 급한 2만7000명에게 신용회복위가 긴급 대출을 해주었다. 1인당 300만원꼴의 소액이었다. 신용회복위로선 떼일 각오를 한 셈이었으나 결과는 놀라웠다. 대출을 갚지 않은 사람이 0.4%(104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걸 보고 신용회복위 사람들은 "300만원의 기적"이라고 했다.

마침내 조 할아버지가 신청한 채무조정 결과가 나왔다. 매달 3만5000원씩 8년간 갚으면 나머지 300여만원은 채권 금융기관이 탕감해준다는 조건이었다.

조만간 신용불량 딱지가 떨어지면 할아버지는 조경 일을 다시 해볼 생각이다. 그는 "내가 못해도 10년은 더 살 텐데…"라고 했다. 빚 300만원을 탕감받는 순간 할아버지에겐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겼다.

어려운 사람을 나락에서 끌어올리는 데는 생각만큼 큰돈 들지 않는다. 따뜻한 배려, 그리고 약간의 '마중물'(펌프에 먼저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할 뿐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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