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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의 몇가지 소묘 |기타도움되는 말...

2011-12-1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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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의 몇가지 소묘

 

 

<1> 
마지막 상추를 땄다. 모두 얼어붙고, 일곱그루만이 서리를 몇번 맞고도 겨우 견디는 중이다.

그걸 이제 막 수확한 것이다. 가을동안 제일 못 자란 놈들이다.

이상한 노릇이다.

가을에 제대로 크지 못한 게 겨울을 더 잘 견딘다는게 말이다.
 
배추도 그렇다. 아직 큰 놈들도 서리를 맞아 얼었다 풀렸다 하며 간신히 견디고 있다.

하지만 자라지 못해 푸성귀처럼 퍼질러 속을 채우지 못한 놈들은 더 잘 견딘다.

몇 놈은 겨울을 나고 햇살이 따뜻해질 때쯤 봄똥 배추처럼 되살아나리라.

가장 불운한 채소들이 더 강한 생존력을 보이는 꼴이다. 배추밭에는 냉이도 꽃대를 피워올리다 얼어버렸다.

 <2>
보름전 김장배추를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었더니 벌써 다 익어간다.

이런 날씨가 보름만 더 가면 겨우내 신 김치만 먹을 듯 하다.
 
 <3>
새벽녘 텃밭으로 '큰 일'을 보러 나갔더니 짐승 발자욱소리가 요란하다.

분명 우리 마당을 향해 내려오는 소리다. 아주 천천히 피우던 담배불을 비벼껐다.

언덕을 내려온 짐승은 내가 노려보는 줄도 모르고 10m쯤 접근했다. 꽤 큼직한 고라니다.

"이놈 참 멍청하네. 저렇게 둔해서야 다른 짐승들한테 잡혀먹기 십상일걸.!"

나는 고라니녀석을 놀래키고 싶어졌다. 한걸음 두걸음 내쪽으로 고라니가 다가서다 멈춘다.

지금 바로 놀래킬 순간이다.

'얏 !!' 고함을 치자 쏜살같이 달아나는 싶더니 몇 걸음 못 가 덤불더미에 머리를 박고 숨어버린다.
 
 <4>
"눈이 내리기전에 고양이 먹이를 뿌려줘야겠다."
눈 내리면 쥐들이 제일 먼저 설친다. 내가 쫓아버린 짐승들은 다시 안 올지 모른다.

그들에게도 적당한 먹이를 뿌려줘야할 듯 하다. 그러나 걱정은 쥐떼들의 습격이다.

겨울동안 쥐들은 보일러실이며 벽 틈새를 갈아댈게 뻔하다. 쥐들이 몰려들면 덫이 소용없다.

수시로 야생 고양이한테 먹이를 줘 불러들이는 것 외에 쥐들을 물리칠 방법이 없다.

고양이 먹이는 생선이나 삼겹살 같은 육류들이다. 물론 생선대가리나 삼겹살 몇 조각 던져주는 정도다.

간혹 딸애가 참치 캔을 사다 주기도 한다.
 
고양이들이 집주변을 포위하고서야 쥐들이 사라진다.

나와 쥐들과는 영영 화해하기는 글렀다.

그들도 잣나무숲의 주인이기는 한데 우리와는 여전히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놈들은 내게 화를 낼 수는 있다.

본래 놈들은 잣나무골의 터줏대감였으니 연고권이 나보다 더 많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벌이는 얕은 수법에 기도 안 찰거다. 놈들 입장에서 먼저 침범한 것은 바로 '나'인 것은 분명할테니...
 
 <5>
욕실 창문이 땀 흘린다. 테라코트를 바른 천장에서도 결로가 맺힌다.

창틀에 곰팡이가 기어오른다.간혹 천장에서도 굵은 물방울이 떨어지기도 한다.

천장의 물방울은 언젠가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처럼 자라나 욕실을 덮을 것만 같다. 뾰족한 종유석에 몸통에 박혀 꿰미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겨우내 아이들은 창문을 닫고, 나는 열고...기나긴 공방전이 시작된다.

새벽 출근이 이른 나는 씻자마자 창문을 연다. 한기가 밀려든다.

그냥 욕실을 나온다. 창문을 여는 이유는 단순하다. 결로 때문이다.

아침 학교 가려고 나왔던 아들녀석이 투덜거릴게 뻔하다. 얼굴을 마주칠때마다 "창문을 좀 닫아달라"고 징징댄다.
 
벌써 내 방은 영상 17도 아래로 낮아졌다. 한기가 도는 방은 창고처럼 아무런 장식과 가구가 없어 더욱 을씨년하다.

방에 들어와서도 항상 두꺼운 양말을 신고, 외투를 걸친다. 겨울 내내 나는 유인원같은 모습일 게 분명하다.

아이들은 더이상 내 방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집은 심야전력으로 난방을 한다.입주한지 16년된 이래 10여년은 난방비 걱정이 크지 않았다.

혹한기 한달이면 30여만원 들었다. 물론 도시의 아파트 난방비에 비해 센 편이지만 그런대로 감당할만 했다.
 
그러던 것이 수년전부터 50만원으로 올랐고, 올해 들어서는 80여만원이 넘어설 처지다.

지금 전력회사는 우리 가족을 교수대에 올려놓은 형국이다.

두 발을 디디고 있는 발판이 꺼지는 순간 중력과 자기 몸무게에 의해 교수형을 당하는 것처럼 난방비가 무거워졌다.

발판 위에서 힘이 빠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락이다.

민영화된 전력회사가 내 목에 굵은 밧줄을 걸어놓은 동안 내 몸은 전혀 다이어트가 되지 않고 있다.

그새 발판을 디딜 힘도 줄어들고 있다.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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