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을 기다려 선착순 분양을 받는 영리한 실수요자들이 최근 늘고 있다. 미분양 물량을 선착순 계약할 경우 청약통장을 그대로 보유해 이후 유망한 아파트에 다시 청약하는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비수기인 연말 들어서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피하려는 아파트 분양 물량이 봇물을 이루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분양이 수도권까지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을 이용해 청약통장을 쓰지 않고 내집 마련에 나서는 ‘실속파’ 청약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 수도권 미분양 6000가구 넘어

부동산 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11월말 현재 전국의 아파트 및 주상복합 가운데 미분양 상태로 있는 물량은 6만2447가구에 달한다. 지난 10월의 5만9976가구보다 4.1%(2471가구) 증가했다.

특히 수도권 미분양 물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11월 미분양은 6233가구로 10월의 5277가구와 비교해 18.1% 증가했다. 이는 2006년 1월의 7272가구 이후 최고기록이다. 분양가 상한제 영향을 받은 경기 양주시 고읍지구 동시분양과 고가분양 논란을 낳은 서울 곳곳의 주상복합 물량이 남으면서 물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중소도시는 3만4615가구로 지난 10월 3만3622가구보다 933가구가 늘었으며, 지방 5대 광역시는 10월 2만1077가구에서 522가구가 늘어난 2만1599가구가 남은 상태다.

◆ 선착순 분양에 몰려

이에 따라 발빠르게 선착순 분양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실제 GS건설이 서울 중랑구 묵동에서 11월초 분양한 ‘묵동 자이’ 주상복합은 3순위 청약까지 청약률 24%에 초기 계약률은 16%에 불과했다. 그러나 선착순 분양 실시 이후 3주 만에 계약률이 40%를 웃돌았다.

양주시 고읍지구는 분양 당시부터 ‘선착순 분양’에 초점이 맞춰졌을 정도다. 통장없이 신청하는 선착순 분양 대기자는 넘쳐나는 데 비해 순위 내 청약은 대거 미달사태가 빚어졌다. 고읍 ‘우미린’은 3순위 청약까지 청약률이 30% 정도에 그쳤으나 선착순 분양에서 대기자가 대거 몰리면서 70%가량의 계약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닥터아파트 관계자는 “청약가점제 시행 이후 선착순 분양에 나서는 ‘노련한 청약자’들이 종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며 “일반적으로 1~3순위 초기 청약률이 50%를 넘어야 분양이 성공한 것으로 판단하는데 최근 들어 초기 분양률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 청약통장 유지 위해 미분양에 계속 관심

12월 분양 예정인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주변의 덕이지구와 식사지구 입주희망자들도 선착순 분양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덕이지구와 식사지구의 예상 분양가는 3.3㎡당 1500만원 선으로 기존 아파트 분양가보다 200만~300만원 높아 순위내 청약에서 대거 미달될 것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 덕이지구와 식사지구의 분양을 준비 중인 건설업체에는 미분양 관련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문의자의 절반 이상이 미분양에 대해 물어온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은 올해말 ~ 내년초에 서울 은평뉴타운과 경기 수원시 광교신도시 등 수도권 2기 신도시에서 상한제를 적용받는 저가아파트 공급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입지가 좋은데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아파트단지의 미분양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실속파 청약자들은 이를 노리고 미분양에 관심을 두는 셈이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아예 선착순 분양 유망 지역을 묻는 청약자들의 문의도 늘고 있다”며 “수도권에서 신도시 공급이 줄줄이 대기 중인데다 재당첨금지 등으로 청약통장을 쓰지 않고 분양을 노리는 영리한 청약자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동근기자 aeon@munhwa.com 프로’들은 미분양 물량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