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30 12:39

http://blog.drapt.com/muhan5/91135913991501

돈은 무시하지도 말고, 대단하게 보지도 말아라.

재력이 있는 집안에 자랐던 K님은 어려서부터 별 어려움이 없이 자랐다. 그러나 K님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집안에 있지 않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K님의 어머니는 K님이 어렸을 때부터 K님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집안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K님의 바램은 어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늘 먹는 것이었다.

게다가 K님의 기억에 남는 어머니의 모습은 늘 돈을 세는 모습이었고, 어머니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돈을 벌어야돼. 그래야 대접받으면서 산다’ 였다. K님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결정적인 일은 K님이 결혼할 때쯤 벌어졌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에 시집가는 K님이 안스러워서 평생 먹고 살라고 건물을 하나 주었다. 증여한 것이다. 그리고 딸에게 증여하는 김에 아들 둘에게도 건물을 하나씩 증여해주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세개의 건물이 모두 모여있었는데, 건물의 위치로 인해서 분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건물의 위치가 좀 묘해서 도로와 주차문제를 놓고 서로 협조를 해줘야하는 상황인데,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건물에 들어선 세입자들끼리 분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주차와 도로 문제를 놓고 세입자들끼리 싸움을 벌이다보니, 당연히 소유주에게 하소연을 하게 되고, 대화로 풀어질 줄 알았던 문제가, 도로를 막네, 어쩌네, 하수관을 따로 빼네, 어쩌네 등등으로 문제가 커지더니만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결국 생각지도 않았던 분쟁으로 인해 형제들끼리는 의가 상하게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문제는 해결하게 되었으나 형제들끼리의 앙금은 어쩔 수 없게 되었고, K님의 오빠 둘은 모두 건물을 헐값에 팔고 그곳을 떠나버렸고, K님만 남게 되었다.

K님은 이 과정을 겪으면서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마음이 더욱 굳어지게 된 것이다. ‘돈은 나쁜 것이다. 차라리 없는게 낫다. 이렇게 있으니 분쟁만 생기고 의만 상하게 된 것이다’

K님은 어렸을 때의 자신의 바람처럼 자신은 좋은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의 밥을 손수 해주고, 가정을 건사하는데 모든 신경을 썼다. 그리고 남편도 K님의 성격처럼 돈을 ‘밝히지 않는’ 그런 남자였기 때문에 K님은 만족했다. K님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와, 남편의 월급을 가지고 풍족하게 살았다. 그러면서 K님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욕심부리지 않고 살면 좋은데 사람들은 뭘 그렇게 안달복달하면서 사는걸까?”

그러던 K님이 50이 넘어서 필자에게 찾아왔다. 다급해진 모습으로 찾아온 것이다. 건물이 거의 다 공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어떡하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하는 말이 ‘내가 어머니를 그렇게 무시했더니만은 벌을 받는거같다’고 한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는 것이 이제는 자녀들도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다른 엄마들은 분양권도 사고, 땅도 사러 다닌다고 하는데 왜 엄마는 맨날 집에만 있어요. 우리도 좀 아파트에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인생을 헛살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K님은 풍족하게 살았기 때문에 돈이란 것은 그저 ‘손만 벌리면 나오는 것’쯤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깐 그냥 욕심만 줄이고 살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줄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50이 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또 돈을 쉽게 생각하는 그런 자세는 아직도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K님은 필자를 찾아와서도 상담만 하면 금방 자신의 어려움이 풀어질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건물 문제가 쉽게 해결될 거 같지 않자 대뜸 하는 말이 ‘300만원처럼 청약통장 하나 있는데 그거 가지고 있으면 몇억은 쉽게 버는 거 아니에요?’ 라고 한다. K님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자 더욱 긴 한숨을 쉬게 되었다.

L님은 성공한 치과의사다. L님은 치과의사로서뿐만 아니라 재테크로도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40대 중반에 백억대가 되는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 그정도의 재산을 가지게 되자, ‘이제는 됐다’ 싶어서 가정에 더욱 충실하기로 했다. 왜냐면 이분 역시 아이들의 어머니인데, 젊은 시절 지나치게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재산은 모았지만 아이들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나가던 치과도 이제는 일주일에 2번 또는 3번만 나가면서 자녀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도 많이 보게 되고, ‘아.. 이것이 인생의 즐거움이구나’하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L님이 자녀들의 성장에 적극 개입해서 보니, 자녀들의 미래가 너무 불안하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자신이 자라던 시대와는 완전히 틀린 시대가 되었고, 자신이 공부하던 수준으로 공부해서는 중간도 못하게 생겼더라는 것이다. 그러나보니 더 대단한 교육, 더욱 미래가 보장되는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되었다. 결국 그게 다 ‘돈’이 필요한 일이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길은 사실 어디에도 없으나 돈을 들이면 마치 불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L님은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돈만 있다고 해서 아이들이 미래가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 때문에 더욱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얼마전 L님은 재테크의 선수답게 대출을 잔뜩 끌어서 강남에 300억짜리 빌딩을 샀다. 그리고 일주일에 2~3번 나가던 치과를 토요일도 없이 나가고 있다. 대출 이자를 내려면 그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L님이 필자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300억짜리 빌딩을 사고 난 다음이었다. 잘 샀는지 봐달라고 온 것이다. 부동산적으로 보자면 잘 사긴 잘 샀다. 그런데 문제는 L님의 생활이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 좀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게 좋지 않겠냐고 해도 L님의 불안함은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를 위한다면 오히려 돈의 귀중함도 알고, 스스로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강하게 키워야지 그렇게 돈에 대해서 감각이 없게 키우는게 더 위험하지 않냐’고 말해도 소귀에 경읽기다. 결국 L님은 이전보다 더 열심히, 마치 빚에 쫓겨서 곧 죽을 사람처럼 일하고 있다. 그가 수백억원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돈은 무시하지도 말고, 지나치게 대단하게 보지도 말아야한다. 돈을 무시하면 돈 때문에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 하지만 돈이 내 인생을 안전하게 해줄거라는 과신을 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과신을 하게 되면 아무리 수백억원을 쌓아놓고 있어도 수백만원을 빚진 사람보다도 더 불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균형’일지는 개인개인의 숙제다. 하지만 이런 균형잡기에 애쓰는 일이 인생을 알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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