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26 20:44

http://blog.drapt.com/muhan5/91130187007117

우리나라의 조급증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것을 가리켜 냄비근성이니 뭐니 말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급증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거 같다. 좀더 여유있게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거의 전무할 지경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CEO Information 7월에는 ‘투자부진 장기화 가능성과 해법’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가 전체적으로 투자가 부진한 이유에 대해서 진단한 내용이 나온다.

투자가 부진한 5가지 이유로 뽑은 것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수출과 투자간의 연결고리 약화, 둘째, 국내시장의 낮은 매력도, 셋째, 신성장엔진 등 새로운 투자대상이 부재, 넷째, 투자자금 조달처인 금융의 기능의 약화, 다섯째, 기업가의 모험정신 약화를 이유로 들고 있다.

하나 하나 모두 의미 있는 말들이다. 나는 이중에서 더욱 관심이 갔던 부분은 다섯번째 이유다.

다섯번째, 기업가의 모험정신 약화에 따른 설명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주주자본주의 확산 등으로 기업들이 장기수익보다는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에 치중하게 되어 투자활동이 위축. -> 부실에 대한 주주나 사회로부터 책임추궁이 강화되면서 기업들이 모험을 회피. 고위험, 고수익 사업에 도전하려는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이 퇴조, 외부 감사와 간섭의 강화로 의사결정이 지연되면서 신사업 육성, 시스템 혁신 등에서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

2. 대다수 기업들이 외국인의 적대적 M&A위협에 노출되면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성적 태도를 견지. ->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아지고 외국자본이 우량기업에 집중투자하게되면서 경영권 방어문제가 현안으로 대두.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결국 이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깊은 정서속에 숨어있는 조급증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좀 진득히, 세계를 품은 듯한 마음으로 배짱좋게 밀고 나갈 수 없도록, 당장 이익을 내라고 옆에서 부추기고 있으니 열매들이 설익는 것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사장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업을 경영하다가 한번 실패한 기업가를 회복 불가능한 낙오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 인간과 기업의 성장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단해 버리는데서 나온는데 빨리빨리 문화의 부정적인 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비해 실리콘 밸리에서는 벤처기업이 실패를 했을 경우,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게 검증되면 그 실패에 대해서 낙인을 찍지 않는다. 실패에 대해서 너그럽지 못한 태도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즉 기업가의 경우 주변에서 실패했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회사를 어쨌든 살려보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더 크게 실패하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원래 법인이라는 것은 법인의 범위내에서만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인의 책임을 대표이사의 개인적인 책임으로 짐을 지우는 경우가 많다. 물론 법인이 어떻게 되든 말든 대표는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짐이 너무 무겁다보니 대표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극단적인 모럴해저드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빨리 빨리’ 문화, 조급증의 문화는 우리나라를 장기적으로 경쟁력있는 나라로 커나가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투자도 그렇다. (결국 이 이야기를 하려고 긴 이야기를 꺼냈다) 좀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업에 대한 투자도 그렇고 부동산에 관한 투자도 그렇다.

부동산 투자를 이런 것에 빗댄다는 것은 좀 무리수가 있어보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자는 거의 대부분 ‘선점’의 투자(누가 누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느냐)이지 가치를 올리는 쪽으로 자금이 몰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시경제와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범위를 확 축소해서 생활주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아는 분 중 대학강사분이 있다. 알다시피 대학강사의 목표는 교수가 되는 것이다. 쥐꼬리만한 시간강사료 받으려고 대학강사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도 압박을 받고, ‘윗사람에게 잘보이기’ 도 열심히 해야하는 총체적 난관에 봉착해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학교와는 무관한 어떤 집단에서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힘있는 교수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어떠했겠는가? 사막 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을 것이다. 학교와 관련된 집단이라면 잘 보인다고 해도 별 티가 나지 않겠지만 학교와 무관한 집단속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일단 경쟁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 대학강사는 그 교수의 눈에 들려고 열심히 노력을 했다. 착한 사람, 봉사하는 사람,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그 집단의 일을 열심히 했고, 궂은 일도 도맡아했다. 그 교수에게 특별히 잘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니 그건 말할 것도 없다. 교수의 식사를 챙기는 것에서부터 디저트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식판 나르기, 자리 맡아주기, 우산 펴주기 등등…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비가 내린 날이었다. 모든 것을 철저히 챙기던 대학강사가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 그 교수님도 우산이 없었다. 그러자 그 대학강사는 안절부절하였다. 이때 마침 친구가 우산을 펴는 것이었다. 대학강사는 잽싸게 우산을 좀 빌리자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도 난감했다. 왜냐면 자신도 우산을 빌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학강사는 다짜고짜 우산을 뺏다시피 가져와서는 교수님이 가는 길을 안내해줬다. 친구는 빨리 가져와야한다고 했다. 왜냐면 자신도 잠깐 쓰고 돌려주기로 했고 우산의 주인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친구의 당부도 몰라라한채….. 대학강사는 교수님의 모셔다드렸을 뿐만 아니라 교수님이 부탁하지도 않은 교수님의 남편, 아이들까지 모두 하나씩 모셔다 드렸다.

그 정성이 갸륵한가?

그 대학강사는 교수가 되었을까?

공교롭게도 그가 그날 친구에게서 빌렸던 우산은 그 교수와 가장 친한 다른 교수의 우산이었고, 그 교수는 그날 공항에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남이야 어떻게 되는 말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그 대학강사의 행동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었고, 지금 그 대학강사는 자신을 키워줄 또다른 교수님을 여전히 찾고 있다.

단기적인 수익에 눈이 먼 투자에 대해서는 여러 번 경고한 바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사기가 아니라면 당국의 시퍼런 칼날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경우도 태반이다.

투자라는 것은 자본이 들어가서 그 것에 대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밑거름이다. 그 밑거름을 쏟아부었다면 진득히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 밑거름이 영양분이 되어서 씨앗을 키우고, 싹이 나게 하고, 가지가 자라고, 이파리가 무성해지고, 결국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진득히 기다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열매가 맺어지는 듯해도 좋은 열매가 맺어질 때까지 기다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게 투자다.

나는 이런 것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런 건전한 투자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믿는다. ‘밑거름’이 건전하게 투자가 되어야할 곳으로 들어가서 좋은 열매들을 맺게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개인은 아무런 이익이 없는것일까? 그렇지 않다. 투자의 개념이 제대로 정착되어진다면 각종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안정적이면서도 꾸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은 제대로 열매를 맺는 그 시점에서는 큰 수익을 낼 수가 있다. 분위기에 따라서 우르르 쫓아다니다보면 맨날 막차밖에 탈 수 없다. 순발력 좋은 투기꾼들과 솜씨좋은 사기꾼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들과 경쟁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좋은 투자자가 되자. 좋은 투자자가 되는 것만이 그들을 이길 수 있는 길이다.

무조건 장기적인 투자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지나친 조급증만은 피하는 것이 좋은 투자자가 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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