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까지 전세로 살며 내집 마련을 미뤄왔던 지인들중에 유독 명문대 경제학과 출신들이 많았다. 수요와 공급을 내세우며 집값 폭락이 멀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것이 2000년 중반부터니 거의 7년이 다 되어갔나 보다. 그들이 주식에 상당액을 투자하고 있고 믿었던 2000 포인트가 도대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속상해 하고 있다는 것도 닮았다면 많이 닮았다.

경제학이란 것이 그렇다. 수요와 공급으로 세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믿게 하고, 수요와 공급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최적 의사결정이 아니므로 곧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원리로 설명한다. 그런 원리에 대한 믿음으로 그들은 지난 수년간 집값 상승을 보면서도 대폭락의 예언을 강변해왔는지도 모른다.

지난 4월과 5월에는 지금과 똑같은 현상이 있었다. 연일 신문에서는 집값 폭락이니 일본식 버블이니 떠들고 있었다. 게신판에는 폭락과 폭등의 논쟁도 지금에 못지 않았다. 정부는 판교를 시작으로 공급을 늘려갈 계획이니 참고 있으라고 하고 끝물에 몸사리라고 했었다. 이 즈음에 모임에 나가면 경제학과 지인들은 더욱 기세가 높았다. IMF에 집 팔고 전세 살며 주식에 크게도 물려 있었지만 다가올 "집값 대폭락, 버블 붕괴"의 시대가 자신들이 옳았음을 입증할 것이라고...

하지만 가을이 되자 그들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혹시나 했던 것이 현실이 되면서 모임에도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5월 대폭락으로 믿었던 주식마저 줄줄이 나가떨어지고 번듯한 집 한 칸 마련도 어렵다는 생각이어서인지 모임에 나오더라도 한 구석에서 앉아 술잔만 기울였다. 그리고는 현 정권의 무능을 대놓고 욕하기 시작했다. 몰래 넣은 판교에서 배반당한 마음도 컸었나보다.

그나마 후배중의 한명은 아내가 9월에 몰래 계약을 하고 와서 대판 싸움까지 났었다고 했다. 30평형대 후반을 계약했다고 하는데 집값 상승으로 두 달도 안되어 적지 않게 올랐다고 한다. 집값 폭등은 역시 사회 문제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켠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집안에서의 발언권이 아내에게 쏠리고 경제학도로서의 자존심도 상했지만 전세로 살던 불안감은 줄었다고 너스레였다.

요즘의 가격에 대해서 적정성 논란이 많다. 대학의 한 경제학과 교수님이 수업중에 요즘 부동산 가격에 대해 어찌 보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부동산 전문가도 아닐 뿐만 아니라,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현실의 특정 자산의 가격에 대해 논평하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대답이었다.

자신은 강남에 살지도 않고 들어갈 형편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객관적인 입장이라도 강남의 집값에 대해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단다. 아니 집값에 대해 논평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것이다. 가격은 그 값에 사겠다는 사람과 팔겠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정해지는 것이며 수급이 맞지 않으면 가격이 조정되는 것이지 가격의 적정성을 개개인의 믿음과 정서만으로 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집은 수요와 공급은 수년간에 걸쳐 조정되기 때문에 가격에 의한 수급 변동이 무척 낮은데, 단기적인 이윤을 좇는 투기꾼과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가격 시장을 눌러 놓아야 하는 정치권에 의해서 시장이 교란되고 있다는 것이 더욱 문제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작은 자극에도 시장 가격이 급변하게 되는데 장기적으로 수급 조절 능력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요즘 게시판마다 집값에 대한 말들이 참 많다. 이런 전망들에 댓글을 달며 흥분하여 아마도 마주 앉아 있으면 삿대질이라도 할 판이다. 경제학자도 논하지 말라는 부동산 가격에 대해서 누리꾼 몇몇이 내놓는 의견들이 희망이자 주장일 뿐 일고의 가치나 있을까?

신문의 가격 하락 기사를 주장의 근거로 내놓는 글도 많다. 정부의 신도시 관련 특종을 놓칠까봐 노심초사 하며 건교부의 의향대로 "연일 하락" 기사를 써주는 신문의 부동산 담당 기자들이 내놓는 기사가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전할까? 작년 5월 부동산 시장 대폭락의 기사로 도배를 하던 그 신문들의 그 기자들인데...

시세를 내놓는 부동산들이 각 업체와 은행 시세 담당자때문에 열받아 있단다. 실제로 거래된 가격을 알려줘도 게시할 때는 가격을 낮춰서 내놓는단다. 객관적 시세를 게재한다고 하는 곳들도 서로 가격 등락이 다르게 나오는 마당에 그 방향을 어찌 논할 수 있을까.

뜨내기 부동산들은 더욱 믿을 수 없단다. 4000세대 아파트 앞이 뉴타운 개발을 앞두고, 7~8군데 되던 부동산업소가 지금은 큰 길 옆으로만 20군데가 줄지어 있다. 그런 부동산에 들어가면 집값 대폭락은 기정사실로 이야기하고 매도자의 물건을 모두 급매물로 만든단다. 매수자가 없으니 급매물로 만들어야 거래가 되기 때문이다.

수년간 가깝게惻뺨?부동산업소에 들르니 서둘러 팔지는 말란다. 급매물이야 언제나 있는 것이고, 지금은 급매물만이 매매되는 시기일 뿐 급한게 아니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가격 폭락의 우려를 물으니 빙긋이 웃기만 한다. 십수년을 부동산 했었지만 집값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는데 경제학과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뱅.ydhy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