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13 20:34

http://blog.drapt.com/k2419/91130186984812

저는 결혼한 지 햇수로 10년 정도되는군요.
나름대로 알뜰하게 살면서 저축도 많이 하고 결혼 후 1년만에 지방에 있는 아파트도 한 채 분양받았지요. 물론 제가 당장 들어가 살지 않고 융자와 전세를 안았으니까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런 뒤에 수도권으로 이사와서는 쭉 전세로만 살았구요. 빌라를 거쳐 지금까지 전세로만 4번째 정도 옮긴 것 같아요. 그때 집을 샀다면 제가 이런 글을 올릴 일도 없겠지요. 그럼 지금부터 저의 실패담이랄까 하는 걸 쭉 풀어볼게요. 먼저 여건이 좋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집을 살 생각을 못한 게 저의 실패의 첫번째 원인이 되었구요. 그리고 집을 사지 않고 있으면서 지방의 아파트를 처분해 갑자기 많아진 현금이 실패의 두번째 원인이지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때마침 주식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죠. 정말 1999년도까진 무서울 정도로 주식 시장이 상승세였죠. 당시엔 저도 돈도 많이 벌만큼 벌었다고 생각해요. 대략 10배 가까이 올라간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그때 저희 부부가 계산기 들고 가슴 두근대며 행복해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로워요. 진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결론적으로 제 때 처분을 못해서 현재 번 것 빼놓고 제가 손해본 것은 대략 1억 정도가 됩니다. 그동안의 노력과 정신적 고통, 그리고 상실한 기회 비용 등을 생각하면 손실은 훨씬 크지만요.
이번에 주인이 집을 매물로 내 놓았더군요. 그러면서 다른 전세를 알아 보러 다니다가 정말로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내가 여태 뭐하면서 살았나 싶기도 하구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맨날 남의 셋방 살이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괴심도 들구요. 또 있는 돈도 못 지킨 한심함이 더 저를 괴롭혔지요. 하지만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덜컥 집을 샀답니다. 그러고 나니 테러 사건이 일어나더군요. 또 한번 저에게 시련이 닥치는 듯싶어 정말 울화가 치밀어 오르대요.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요동친다 하더라도 이젠 두발 뻗고 잘 수 있는 우리집이 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으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이제 다음달부터 제 통장은 은행 것이 됩니다. 대출금 갚아야 하니까요.
여러분 중엔 저보다 연세가 드신 분도 계시겠지만, 아마 이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시는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해요. 현명한 판단도 뛰어난 재테크도 중요하겠지만, 소걸음 걷듯 뉘엿뉘엿 서산에 해지는 모습도 달뜨는 모습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최고라고 조언드리고 싶어요.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건 돈보다는 편안한 마음이라 생각하며 두서없이 몇 글자 적어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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