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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수원현미경(115)] 수원 민자역사는 현대백화점이 될 뻔했다- 김충영 논 |♣김충영의현미경

2023-07-1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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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수원현미경(115)] 수원 민자역사는 현대백화점이 될 뻔했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기자명김충영 논설위원 입력 2023.07.10 05:50 수정 2023.07.10 06:16

1920년대 엽서에 담긴 수원 명소 사진. 1928년 8월 27일 완공된 한옥 수원역사로, 한국전쟁 당시 파괴됐다.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수원역은 1905년 1월 1일 경부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열었다. 경부선은 국가 간선철도로 여객과 화물 물동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역사(驛舍)의 필요성이 대두 됐다. 1927년 6월 1만원의 예산으로 역사 설계에 착수, 1928년 8월 27일 낙성식에 이어 9월 1일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수원역사는 일제 강점기임에도 수원의 역사성을 고려해 한옥형식으로 건축됐다. 수원역의 모습은 단층 벽돌조로 지붕은 기와를 얹혔다. 내부 대합실 천장은 격자무늬를 새겨 한국적인 모습을 살렸다.

1930년대 수인선과 수여선 개통 후 수원역은 이 노선의 시·종착역 기능과 노선간 연결기능, 환승역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경기 남부지역의 교통 요충지로 발전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중요성을 인정받아 1949년 수원역은 사무관급 역으로 승격했다.

한국전쟁 이후 새로이 건축한 수원역사. 1961년 9월 20일 완공됐다. (사진=수원시)

수원역은 1950년 발생한 한국전쟁으로 한옥역사가 소실됨에 따라 1961년 1월에 새로운 역사를 착공, 8개월 만인 1961년 9월 20일 완공했다. 1963년에는 또다시 서기관급 역으로 승격했다.

1974년 8월 15일 우리나라 최초로 수원까지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됨에 따라 1975년 전철역사를 준공했다. 이후 수원역은 일반철도 승객과 도시철도 승객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또다시 1989년 역사를 증축했다.

철도청은 1989년 최초로 서울역과 동인천역 민자역사 사업을 추진했다. 뒤이어 1991년에는 영등포역, 1997년 산본역, 1999년 부천역, 2000년 부평역 민자역을 개장했다.

현대계열 금강개발(현대백화점)이 제출, 선정된 수원민자역사 모습. (사진=진우건축)

수원역은 1993년 수원민자역사 주관사업자 선정 작업이 추진됐다.

당시 ‘수원민자역사’ 공모에 5개 컨소시엄 업체가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1등은 1200점 만점에 1051점을 얻은 현대계열 금강개발(현대백화점)과 수원 진우건축 김동훈 건축가의 컨소시엄에서 제출한 작품이 1등을 했다. 2등은 1016점을 받은 애경산업이 제출한 작품이 차지했다.

그런데 1995년 1월 27일 이변이 발생했다. 1등을 한 금강개발(현대백화점)이 신규사업투자에 필요한 주거래은행의 사전승인을 얻지 못했다는 사유로 수원민자역사 주관사업자 선정에서 취소를 당한 것이다. 1등을 한 금강개발(현대백화점)이 수원민자역사 주관사업자에서 탈락하자 철도청은 차점자인 애경산업을 수원민자역사 주관사업자로 선정을 하기에 이른다.

다음은 1998년 5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비화> 문민정부 김영삼 정권 5년 공과(功過)49, 4부 김현철의 힘과 몰락〔8〕 수원민자역사 사업권 당초엔 현대를 선정, 애경으로 뒤바뀌자 현철씨 지원 '소문 무성’

1995년 10월 정기국회 건설교통위원회 국정감사장.

경기 수원민자역사(驛舍) 운영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국민회의 이윤수 의원이 증인으로 불러 나온 애경유지 채형석 사장을 추궁했다.

이윤수의원 = 업계에서는 금강개발이 사업권자로 선정됐을 때 애경유지가 ‘결국은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자신있게 사업권을 따낼 것이라고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채사장 = 사실이 아닙니다.

이의원 = 본인이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녔을 때는 철도청이나 그 보다 높은 고위층에서 언질을 받았다는 증거 아닙니까.

채사장 = 저는 그런 얘기를 한 일이 없습니다.

수원민자역사 운영사업자 선정의혹은 국정감사까지 받았지만 김현철씨의 개입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대표적인 경우.

수원민자역사 사업의 핵심은 백화점 건설이었다. 역사에 들어갈 백화점은 당시 유통업계가 주목하던 사업이었다.

현대그룹계열의 금강개발은 1994년 10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수원민자역사 사업권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금강개발은 1995년 1월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대신 유통사업에 새로 진출한 애경그룹이 새로운 사업권자로 선정됐다.

“현대 중도하차 윗선서 결정”

당시 정가에는 ‘현철씨 개입설’이 은밀히 나돌았다. 주로 채시장과 중학교 동기 동창이자 청와대 내 ‘김현철맨’인 K비서관의 관계 때문이었다.

당시 정가에는 현철씨 개입설이 은밀히 나돌았다. 주로 채 사장과 중학교 동기 동창이자 청와대내 ‘김현철맨’인 K비서관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채사장-K비서관-현철씨로 이어지는 비선이 애경의 사업권 따내기를 지원했다는 것이 설의 요지.

당시 철도청장은 나중에 공정거래위원장과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로 승진가도를 달린 김인호 전 경제수석이었다. 당시 건설교통위원이었던 민주계 중진의 설명.

“현대의 중도하차 이유가 뭔가 석연찮아 김인호 청장에게 슬쩍 물어봤습니다. 김청장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건 제 선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라고 토로하더군요.”

현대가 중도하차한 표면상의 이유는 주거래 은행인 외환은행의 투자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외환은행은 현대가 경주의 호텔신축 등 과잉투자로 자기 자본비율 17%를 넘지 못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현대는 당초 사업권자 모집공고에 주거래은행 투자승인이 명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전 어느 민자 역사의 경우에도 투자 승인 문제가 거론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철도청이 현대의 사업권자 선정을 취소한 1995년 1월에는 이미 정부의 투자승인제도 철폐방침이 서 있었는데도 그런 이유로 사업권을 애경에 넘긴 것은 명백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투자승인제도는 1995년 4월 폐지됐다.

사업권자가 애경으로 바뀌자 금강개발은 사업권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룹에서는 사업권자 선정 취소 직후 “당국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고 발표했고 금강개발의 소송의지도 실종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민주계 핵심인사의 설명.

“수원 민자역사는 현철씨가 아무런 대가없이 화끈하게 봐준 겁니다. 현철씨 측근인 K비서관이 애경의 채사장과 둘도 없는 친구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윗대의 교분이 더 두텁습니다. 애경의 오너인 장영신 회장의 작고한 오빠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김 전대통령은 예전에 장 회장을 ‘영신아’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현철씨는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경에 대해서는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현철씨는 K비서관을 통해 채 사장과 몇차례 술자리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애경에서 돈가방을 들고 왔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현철씨는 돈을 가져온 사람에게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느냐’며 모욕을 주다시피해서 돌려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채사장은 몇차례 검찰어 불려가 조사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경은 재무구조가 건실한데다 채 사장이 국정감사 때 말한 것처럼 현대같은 재벌에 비해서는 100분의 1도 안되기 때문에 1억원만 움직여도 사주가 알게 돼 있는 회사입니다. 검찰조사에서 나올 게 없었을 것입니다."

2020년 수원역 광장과 수원민자역사 모습. 2003년 2월 문을 열었다.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수원 민자역사 관련 루머는 이후 나돌지 않았다.

수원 민자역사는 우여곡절 끝에 2003년 2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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