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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수원현미경(102)] 효원공원을 조성한 이야기-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 |김충영의현미경

2023-01-0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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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수원현미경(102)] 효원공원을 조성한 이야기-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기자명김충영 논설위원 입력 2023.01.09 05:10수정 2023.01.09 09:22

효원공원입구 상징조형물. 서북공심돈을 형상화했다. 공원명은 소형 양근웅선생이 썼다. (사진=김충영 필자)

1967년 7월 3일 수립한 도시계획에서 3만9500㎡가 ‘인계 제2호 공원’으로 결정됐다. 이후 공원부지는 1980년에 수립한 ‘수원도시장기종합개발계획’구상(안)에서 중심상업지역으로 계획됐다. 이어 추진된 20년 단위의 ‘2001년 수원시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건설부(국토교통부 전신)는 중심사업지역이 수원시의 여건에 비해 너무 넓다고 축소를 주문했다. 당시 최영길 도시과장은 건설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중심상업지역을 축소하여 공원을 계획했다.

이때 권선토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한 한국토지공사가 권선지구 인접지인 매탄1택지개발지구의 사업 참여를 요청했다. 수원시는 ‘2001년 도시기본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인계 제2호 공원’을 ‘매탄1택사업지구’에 편입하여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토지개발공사는 수원시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공원조성은 수원시가 추진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토지공사와 수원시의 합의로 ‘인계 제2호 공원’은 3만9500㎡(1만1950평)에서 22만5826㎡(6만8312평)로 확장됐다. ‘매탄1택지개발사업’은 1984년 4월 11일 지구로 지정돼 1988년 9월 26일 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인계 제2호 공원’은 수원시에 인계됐다.

이 과정에서 제일 먼저 추진된 사업은 수원시문화예술회관(현 경기아트센터)이었다. 시청 옆 의회부지에 건립하기로 했던 계획이 부지가 협소해 올림픽공원으로 위치를 바꿔 추진했으나 도시공원법의 부적합으로 불가피하게 ‘인계 제2호 공원’으로 위치를 바꿔야 했다. 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추지하던 1985년에는 매탄1택지개발사업이 미 준공돼 수원시에 이관 되지 않아 문화회관 건축허가 때는 한국토지공사로 부터 토지 사용동의를 얻어야 했다.

‘인계 제2호 공원’이 ‘효원공원’이 된 것은 이윤희 도시과 도시정비계장(전 삼호아트센터 이사장) 때문이었다. 당시 수원시 도시과는 도시행정계, 도시계획계, 구획정리계, 도시정비계가 있었다. 필자는 1988년 7월 1일 도시계획계 차석에서 구획정리계장으로 승진했고, 1992년 8월 21일에는 도시계획계장으로 자리를 옮겨 1994년 8월 21일 까지 도시과에서 9년을 근무했다.

1988년 7월 1일 수원공업고등학교 동창인 이윤희 계장이 건설과 도로보수계장에서 도시과 도시정비계장으로 자리를 옮겨 필자와 함께 근무하게 됐다. 도시정비계에서는 개발행위허가와 공원조성업무를 담당했다. 1990년 수원시 인구는 64만5000명의 도시였으나 번듯한 공원하나 없는 도시였다. 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어린이 공원 부지를 확보 했으나 제대로 조성하지 않아 수목 몇 그루와 놀이기구 몇 점이 고작이었다. 대부분의 공원은 공지나 다름없었다.

1990년 1월 항공사진. 경기도문화예술회관만 먼저 건설되고 뒤편 효원공원은 임야와 논과 밭의 모습이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이윤희 계장은 ‘인계 제2호 공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88년 매탄1지구 택지개발사업이 준공돼 6만평의 공원부지를 인계 받았기 때문이다. 공원부지는 임야와 밭이어서 공원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부지런한 주민들의 텃밭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계 제2호 공원’을 어떤 주제로 조성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나라사랑'을 주제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옆에 있는 필자와 당시 김재기 과장에게 의견을 구했다. 나라사랑을 테마로 한다는 것은 무궁화동산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무궁화를 알기 위해서 서울농대 화훼과 등을 찾아다니면서 무궁화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결론은 무궁화동산을 만들만큼 수종이 다양하지 않음을 알게 됐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수원의 정체성인 효를 상징하는 ‘효원공원’을 조성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는 건설과 도로보수계장 시절 지지대 고개 시 경계에 ‘효원의 도시 수원’이라는 표지판을 세울 만큼 수원의 정체성인 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효와 관련된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수원의 효에 대해서 연구해야 했다.

그는 ‘인계 제2호 공원’ 조성 추진계획서를 작성, 당시 이호선 시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이 시장은 적극 지지해주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민선시대를 열기 위해 1991년 지방의회가 먼저 출범한 상태였다. 다음 지방선거 때인 1995년 7월 1일에는 민선지자체장의 출범이 결정된 상태였다. 이호선 시장은 민선 수원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수원시장으로 부임했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민선 수원시장에 꿈이 있던 이호선 시장은 이 계장의 계획(안)을 적극 지지했다. 이 계장은 공원조성계획을 직접 디자인해서 시장에게 보고했다. 효를 주제로 테마공원을 만드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이 계장의 의견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이론적인 연구와 기본계획이 필요했다.

‘효원공원 연출기본계획 및 실시설계’를 경희대학교 부설 조경계획연구소 안봉원 소장이 맡게 됐다. 1992년 초부터 계획 및 실시설계가 시작돼 1992년 12월에 용역이 완료됐다.

‘효원공원’은 ‘인계 제2호 공원’ 전체 면적 22만5826㎡(68,312평)중 문화예술회관부지와 도로 남쪽의 공원부지를 제외한 7만8000㎡(2만3000평)을 효원공원으로 계획했다.

효원공원의 기본방향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효의 내용을 교육적인 주제를 선정해 이야기 형식의 시나리오로 연출한다. 둘째, 가정의 중요성 및 가족관계에서 효의 필연성을 주제로 연출한다. 셋째, 어린이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효의 필요성과 부모의 정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연출한다. 넷째, 가정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연출한다. 다섯째, 전통적인 효 관련이야기를 연출한다.

효원공원 전경. 2012년 3월 9일 이용창 사진작가가 헬기에서 촬영했다. 광장 가운데 어머니상의 조각과 산책로를 따라 조형물이 배치됐다. 왼쪽 상단부에는 월화원이 조성되기 전 모습이다.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설치 조형물은 효원공원 건립 취지문비 1점, 효 권장 시비 5점, 조각품 4점, 효원공원 입구 상징조형물4점, 심청전 도자부조 1점 등 모두 15점이 계획됐다. ‘효원공원 건립 취지문비’는 소형 양근웅 선생의 글을 새겨 세웠다.

효원공원에 5점의 효 권장 시비를 세웠다. 첫째 작품은 양주동 선생의 '어머니 마음' 시비를 서예가 양은진 선생의 글씨로 새겨 세웠다. 두 번째는 정철의 ‘훈민가’ 중에서 효 권장 내용을 도양 김병학 선생의 글씨를 새겨 세웠다. 세 번째는 명심보감 효행편의 효자비를 동주 이한산 선생의 글씨로 새겨 세웠다. 네 번째는 정조대왕 효 어록비를 세웠다. 다섯 번째는 ‘효는 백행의 근본’ 시비를 한갑수 선생의 글씨로 새겨 세웠다.

심청전 슈퍼 그래픽 도자부조 작품. 길이 50m, 높이 2.4m의 옹벽에 서울산업대학교 도예학과 이기원 교수가 제작 설치했다. (사진=김충영 필자)

조각 작품은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위대한 탄생, 심청전 도자부조 작품으로 설치됐다. 심청전 내용을 10개 주제로 구성해 길이 50m, 높이 2.4m의 옹벽에 설치했다. 효원공원의 조각 작품은 서울산업대학교 도예학과 이기원 교수의 작품이 설치됐다.

광장에 조성된 어머니상 조각작품.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효원공원 중앙에 6층의 원형 단 위에 어머니상을 설치했다. 어머니 상은 효원공원 광장 중앙에 설치했는데 공원과의 부조화 의견에 따라 공원재편 과정에서 이전 설치됐다. 효원공원 출입구 양쪽에 서북공심돈을 상징하는 조형물 4점이 설치됐다. 상징조형물에 ‘효원공원’명을 소형 양근웅 선생의 글을 새겼다.

효원공원은 경기아트센터(전 경기도문화예술회관)를 시작으로 1994년에 조성됐고, 1995년 11월에는 삼성전자가 부담해 수원 야외음악당이 조성됐다. 2005년에는 화성 내 매향동에 있던 수원시 현충탑 부지가 협소함에 따라 효원공원 남쪽에 새로이 조성됐다.

2020년 5월 효원공원 항공사진. (사진=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효원공원에는 매탄파출소(현 매탄지구대), 민방위교육장, 경기도 자유총연맹, 편의시설인 식당동이 들어섰다. 제일 늦게는 월화원이 들어섰다. 월화원은 경기도와 중국 광동성이 자매결연을 맺게 됨에 따라 우정의 상징으로 조성된 중국전통정원이다. 경비는 광동성이 부담했다.

효원공원에는 각기 다른 9개의 시설이 들어섰다. 필자는 1980년대 도시계획 실무자 시절 매탄파출소(현 매탄지구대)와 자유총연맹, 민방위교육장 등 입지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적합한 부지 마련이 어려웠고 시급성을 감안해 이 시설들이 들어섰다.

아무튼 효원공원은 동수원의 중심공원이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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