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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수원현미경(49)]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의 화성행궁 복원 이야기- 김충영 |♣김충영의현미경

2021-12-1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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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13 06:00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뎡리의궤 화성행궁 전도. (자료=화성박물관)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은 1988년 5월 5일 ‘제1회 수원성곽 순례’행사를 진행하면서 화성행궁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된다. 1975~1979년 수원성곽복원공사 때 화성행궁과 팔달문 양옆 400m 구간이 복원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1989년 수원의료원(경기도립병원) 신축 계획이 발표됐다.

심 원장은 행궁터에 수원의료원이 현대식 건물로 다시 지어지면 화성행궁은 영원히 복원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89년 4월 수원 향토사학자인 이승언씨에게 수원에 대한 자료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한 달여 지난 1989년 5월말 이 씨가 심재덕 문화원장을 찾아왔다.

심재덕은 드디어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그는 이승언과 함께 한글 '화성행궁도(華城行宮圖)'라고 쓰인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화성성역의궤’에 있는 화성행궁 그림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확연한 화성행궁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발품을 팔아서 직접 손으로 자료를 뒤져야 했다.

심재덕은 이승언과 문화원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원의 효맥(孝脈)은 이것이다. 행궁복원만이 효원의 전통을 살리는 길이다”

일제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뒤 ‘조선읍성 철거 시행령’을 발동했다. 그로 인해 전국에 있는 300여 곳의 읍성이 철거됐다. 그리고 서울의 5대 궁궐이 훼손당했다. 화성행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철거됐다.

화성행궁터사진. (사진=수원시)

심재덕은 화성행궁을 정식으로 복원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당시 심재덕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행궁자리에 있던 경기도 수원의료원과 수원경찰서, 여성회관, 신풍초등학교를 옮기고 화성행궁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심재덕의 의지는 강했다. 그는 자신의 주변부터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의 집요한 설득에 수원의 주류 인사들이 하나둘 동참했다. 심재덕은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 발기인 모임을 모집했다. 1989년 6월 17일 수원문화원 2층 회의실에서 ‘화성행궁 복원추진 위원회 발기인회’를 개최했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위원장 김동휘, 부위원장 홍의선·안익승·심재덕, 추진본부장 이홍구, 기획부장 임병호, 총무부장 송철호, 사료편찬부장 이승언, 섭외부장 김상용, 홍보부장 김우영 등이었다. 이와 함께 이종학·김동욱·김학두·리제재·송태옥·이상봉·이완선·이호정·조웅호·최홍규 이사(10명), 이근환·정규호 감사(2명) 등 각계를 대표하는 위원 81명이 선정됐다.

심재덕 본인은 위원장을 맡지 않았다. 위원장은 수원의 문화계 원로인 김동휘 선생을 모신 것이다. 이는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화성행궁 복원 추진위원회가 결성됐음에도 많은 시민들은 과연 가능하겠냐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 당시 화성행궁터에 있던 수원의료원의 증개축에 대한 건축설계가 끝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1989년 6월 초 심재덕은 김동휘 선생, 이종학 서지학자, 안익승 경기도 유네스코회장, 이승언 향토사학자 등과 함께 사전 약속도 없이 경기도지사실을 방문했다. 도지사 비서실은 수원 유지들이 오자 약속이 된 줄 알고 도지사실로 안내했다.

당시 임사빈 도지사는 점심식사 후 휴식 중이라서 당황했다고 한다. 심재덕 문화원장과 일행은 임사빈 도지사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간악한 책동으로 파괴된 화성행궁터에 수원의료원을 증축하면 영원히 화성행궁을 복원할 수 없다. 그러니 수원의료원 증축 계획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임사빈 도지사는 심재덕의 이야기를 듣고 수원의료원 증축담당 국장을 불러 경위를 들었다. 그러고는 그 계획을 유보시켰다. 수원의료원을 연초제조창 옆으로 이전토록 지시했다. 이로써 화성행궁 복원의 단초가 열린 것이다. 화성행궁 복원에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지만 임사빈 도지사의 현명한 결단이 없었다면 화성행궁은 복원되지 못했을 것이다.

수원의료원 조감도. (사진=수원시)

1989년 12월 7일 화성행궁 복원을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의 건의사항이 발표됐다. ‘수원의료원 소재지, 수원경찰서 소재지, 경기도 여성회관 소재지 등 화성행궁터 일대를 사적지로 지정할 것, 현재 행궁지에 소재한 공공기관을 점차적으로 이전토록 조치해 행궁을 복원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것. 행궁과 아름답게 조화된 수원천을 비롯한 자연경관이 옛 모습대로 보존 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시책을 수립할 것’ 등이었다.

이같은 시민단체의 건의가 지속되자 1990년 12월 22일 화성행궁에 있던 수원의료원이 이전됐다. 1993년 8월 10일에는 화성행궁 복원이 수원시정의 중점시책으로 선정돼 행궁복원을 위한 장기계획이 수립됐다.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현판식. (사진=해우재 제공)

대부분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심재덕의 도전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를 계기로 민관이 함께 행궁복원을 추진하게 됐다. 그 해 12월 22일에는 행궁복원을 위한 시민설명회가 개최됐다. 이후 민관 합동으로 다시 정비돼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가 정식 출범했다.

위원장은 심재덕, 부위원장은 김동욱·안익승, 위원은 이종학·조정환·김용규·유재언·최봉수·송후석·남우철·김주태·김동휘·이상해·박언곤·윤규섭·리제재·임택명 등이었다. 당시 심재덕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자신의 결의를 밝혔다.

“병원이나 경찰서를 지을 땅이 다른 곳에 얼마든지 있는데, 행궁터에 공공기관을 세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일제가 문화 말살정책의 하나로 계획적으로 행궁을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이 끝난 지 46년이 지나도록 행궁을 되살리지 못한 것은 문화국민의 수치로 하루빨리 행궁 복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화성행궁터 발굴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화성행궁 복원사업은 더욱 구체적으로 진척돼 1994년 3월에는 시비 2억4800만원을 투자해 화성행궁 터에 대한 유구 및 지표 조사가 실시됐다. 그 해 5월13일에는 수원의료원 건물이 완전히 철거됐다. 이어 1995년 4월 24일에는 화성행궁터가 경기도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심재덕이 수원시장에 당선되면서 화성행궁 복원사업은 수원시의 중점사업 제1호가 됐다. 1996년 8월에는 2차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1차 발굴 조사에서는 어도(御道)와 장대석열(長臺石列) 등이 확인됐다. 2차 발굴조사에서도 어도와 경룡관지, 유여택지, 복내당지와 석누조 등 각종 유구 등이 발굴됐다.

화성행궁 복원 기공식. (사진=수원시)

1,2차 발굴조사를 통해 화성행궁의 주요 전각 위치가 대부분 확인돼는 성과를 얻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1996년 4월 25일 실시설계를 완료했다. 화성행궁 복원 시점은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1796년으로 설정했다. 1996년 5월 3일 경기도로부터 설계심의를 받았다. 그해 7월 18일 역사적인 화성행궁 복원 기공식이 거행됐다.

1997년 9월 12일 화성행궁의 정전(正殿)인 봉수당(奉壽堂)의 상량식을 통해 화성행궁 복원에 한걸음 더 내딛었다. 심재덕은 봉수당 상량식을 보며 감동했다. 상량식에서 심재덕은 화성행궁 복원의 역사적 가치를 선언했다.

화성행궁 봉수당 상량식 사진. (사진=수원시)

“화성행궁은 화성의 모태로서 화성행궁의 복원은 민족문화와 역사를 복원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일입니다. 이제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재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심재덕에게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행궁복원추진위원으로 처음부터 참여해온 수원의 서지학자인 이종학 선생이 심재덕 시장을 찾아가 수원성이라는 명칭이 옳지 않으며 원래의 이름인 화성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제안을 들은 심시장은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이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1996년 10월 ‘수원성 축성 200주년’을 기념하는 정보통신부의 우표발행을 막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수원성’이란 이름은 잘못된 것이니 원래 이름 ‘화성(華城)’으로 변경해서 우표를 발행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문화재청이 1963년 사적 제3호 수원성곽으로 지정하여 다른 이름을 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우표 판매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종학 선생은 문화재청에 화성 제 이름 찾기 건의서를 제출하게 된다. 심시장은 문화재청에 화성 제 이름 찾기에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했다. 그러자 문화재청은 문화재심의 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수원성’을 ‘화성’으로 변경하기로 최종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화성행궁 복원 공사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심재덕 시장은 화성행궁 복원을 추진하면서 다음 사업으로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운동'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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