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권력’이 지방행정을 농단했다.

상위법에 명백히 저촉되는 조례안을 보란듯이 의결하고, 의장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14일 경기도의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도의원들은 이날 지방권력을 입법과 행정 둘로 나눠, 별개의 기관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고자 한 지방자치원리를 망각한 듯 입법권력을 멋대로 남용했다.

우선 상위법에 저촉돼 재의(再議·재의결) 요구가 예고됐던 ‘경기도 학교용지부담금 부과·징수 및 특별회계 설치조례 일부 개정안’을 일부 수정해 의결했다.

개정안은 도지사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의한 세입(학교용지부담금)의 90％ 이상을 매월 말일까지, 일반회계 전입금은 상·하반기 두 번에 걸쳐 도교육청에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매년 연말에 1년치를 일괄 지급하고 있는 방식을 바꿔 매월 지급하라는 것인데, 이는 행정부(경기도)의 권한인 예산편성과 집행권을 침해

새누리당 권혁수(동두천2) 의원이 반대토론을 통해 이런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지만, 숫적 우위를 앞세워 당론으로 밀어붙인 민주통합당은 일사분란하게 통과시켰다.

경기도는 곧바로 조례안을 재의 요구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김문수 지사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 지사는 성명서에서 “예산편성 및 집행권을 도지사에 위임한 지방자치법(제22조), 지방재정법(제33조)과 교육감이 비용부담 등에 관해 도지사와 협의하도록 한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제3조)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재의 요구된 조례안은 재적의원 3분의 2이상 찬성해야 다시 의결할 수 있고, 도의회가 재의결하더라도 경기도는 대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

윤화섭 도의회 의장의 독단적인 의사 운영은 의회권력이 남용되고 있는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윤 의장은 전날 기획위원회가 의결해 본회의에 넘긴 ‘경기도행정기구 및 정원조례 개정안’을 직권으로 상정 보류했다. 자신이 요구한 도의회 사무처 직원 31명 증원 요구를 경기도가 수용해주지 않았다는 게 조례 개정안 상정을 거부한 이유였다.

개정 조례안은 새 정부 조직 개편에 맞춰 도청 조직 일부를 바꾸고, 정원을 65명을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 의장의 요구는 전체 증원 인원의 절반에 가까운 정원을 도의회 사무처에 배정해달라는 것인데, 이는 행정부의 고유 권한인 조직권과 인사권을 침해한 행위라는 게 경기도의 판단이다.

경기도 고위 관계자는 “도의회가 이날 보여준 행태는 행정부의 고유권한인 예산권, 조직권, 인사권을 모두 침해하는 행위”라며 “견제와 균형의 축이 무너진 날”이라고 개탄했다.

동료 의원들조차도 윤 의장의 전횡을 비판할 정도다.

다수의 도의원들은 “의장이 오늘(14일) 아침 양당 대표의원과 기획위원장에게 조례안 상정을 보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면서 “의회 사무처 정원을 늘리는 것이 도의회 전체의 뜻도 아니고, 조례안과 연계시킬 사안도 아닌데 의장이 마치 ‘조자룡 헌칼 쓰듯’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복진기자/bok@joongb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