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지난 10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11계 입찰법정.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아크로비스타 B동 138㎡가 18억원에서 두 차례나 주인을 만나지 못해 11억5200만원에 경매에 나왔다. 단 1명이 참여해 최초감정가의 65%인 11억7020만원에 낙찰됐다.

장면2. 10월 28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현대아파트 103동 147㎡가 4억4544만원에 매각에 부쳐졌다. 최초감정가 8억7000만원에서 세 차례나 연거푸 유찰을 거듭했음에도 이날 3명만 참여해 최초감정가의 61.7%인 5억3700만원에 팔렸다. 서울 소재 아파트가 3회 유찰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흔히 경매시장은 일반 부동산시장과 반비례한다고 한다. 이는 법원 경매시장에 유입되는 물건이 경기 침체의 부산물로, 채무자가 원리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 할 때 채권자가 채권 회수의 마지막 수단으로 경매신청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과 같은 불황기에는 경매건수가 늘어나는 반면 호황기에는 대부분 일반 매매시장에서 거래가 성사돼 법원 경매시장으로 넘어오는 물건이 상대적으로 적다.

서울동부지방법원 경매법정 모습.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상반기의 뜨거웠던 경매 열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때 이른 한파가 경매시장에 몰아치고 있다. 지난 1월 14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는 1438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밤 8시 30분까지 경매를 진행했고, 4월 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마포구 망원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무려 132명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7500만원 주택이 한순간 2억6000만원짜리로 둔갑하기도 했다. 불과 몇 개월 전 우리 주변에서 벌어졌던 이 모든 일들이 이제 먼 옛이야기처럼 들린다.

버블세븐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지역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제때 팔리지 않은 경매물건이 법원마다 쌓여가고 낙찰가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경매시장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수로 낙찰가율과 낙찰률, 입찰경쟁률, 변경·취하건수 그리고 재매각물건수가 있다. 먼저 감정가 대비 낙찰가를 나타내는 낙찰가율과 전체 진행 물건 중 팔려나간 비율인 낙찰률, 그리고 입찰참가자를 나타내는 입찰경쟁률이 시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데 그중 낙찰률은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

10월 20일 낙찰률 6.25%로 최저기록 갈아치워

지난 10월 20일 서울동부지방법원 5계에서는 충격적인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역대 최단시간 개찰과 최소건수 낙찰, 최저낙찰률 등 경매 진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이날 40건의 매각물건 중 8건이 변경·취하돼 실제 32건이 매각에 부쳐져 그중 단 2건만 팔렸다. 낙찰률은 6.25%에 불과했고 개찰시간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부동산 경매정보 제공 업체인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서울 지역 아파트 경매물건의 평균 낙찰가율은 지난 1월 85.44%에서 10월에는 76.97%로 8.47%포인트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참여자 수는 평균 6.7명에서 3.8명으로 약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낙찰률은 40.81%에서 19.77%로 반 토막 났다.

반면 경매물건수는 171건에서 516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경매물건 중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 비율이 두드러져 올해 진행된 경매물건 가운데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는 24%로 4건 중 1건을 차지했다.

하지만 ‘노도강’으로 대변되는 비버블세븐 지역의 중소형 아파트 및 연립·다세대주택은 지난 상반기 매매시장의 초호황세에 힘입어 경매시장으로 유입되기 전 대부분 팔려나가 부동산시장 침체기임에도 오히려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이미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심리적 저지선인 낙찰가율 70%대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너져 60% 중반대에 걸려 있다.

정부의 릴레이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의 약발이 들지 않는다면 마의 60% 벽이 무너지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일 것 같다.

50%대 낙찰가율은 IMF 외환위기 시절 이후 첫 현상으로 낙찰가율만 놓고 보면 당시 체제로 회귀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경매물건이 넘쳐나는 이유는 지난 2006년 전후 부동산 최고점기에 대출을 끼고 막차를 탄 사람이 고금리와 거래실종에 따른 부동산 가격 급락을 견디지 못해 처분하는 경우와 국제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부도가 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래 실종 등 일련의 현상이 일시적 소나기가 아닌 기나긴 장마의 서막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시황을 놓고 보면 내년 상반기에는 경매물건이 지역 구분 없이 더욱 늘어나고 낙찰가는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경매는 일반 매매와 달리 후행하는 시차 현상 때문이다. 채권자의 경매신청으로부터 첫 매각에 이르는 기간이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리는데 요즘은 최소 5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가 더욱 악화된 시점인 하반기에 부도난 물건은 내년 초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경매시장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내년 경매시장 전망
2분기 살아날 듯

최근 경매시황은 시장 분위기를 탐색하는 관찰자 시점이다.

그러나 과거 세 차례(2001년 4월~2003년 10월, 2005년 1월~2005년 8월, 2006년 1월~2006년 6월)에 걸친 부동산 대세상승기에 강남 입성이나 평형대 늘리기 등을 실기한 실수요자들은 그간의 실수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가 펼쳐지고 있다.

단 주의할 점은 요즘은 지역 불문, 종목 불문, 가격 불문하고 거래가 모두 실종돼 실제 시장 가격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따라서 법원 감정가는 어디까지나 참고가격으로만 이용해야 한다.

특히 지난 상반기의 낙찰가율이나 경쟁률 등에 연연해서는 절대 안 된다. 현재의 낙찰가는 향후 시세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10%에서 15% 정도)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역에 따라, 종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 시점에서 버블세븐 지역의 아파트는 60%에서 65% 선이 최적의 낙찰가다.

내년 1분기는 실수요자 우위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여파에 따른 금융위기와 국내외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심리 냉각으로 경매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우호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분기는 그동안 관망세를 취하던 투자자들이 오랜 동면을 끝내고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의 수혜가 예상되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와 일부 토지시장을 중심으로 열기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잠깐용어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 낙찰가율이 100%를 넘어서면 낙찰된 물건의 입찰 가격이 감정가보다 높다는 뜻.

·낙찰률：입찰에 부쳐진 물건 중 낙찰자가 결정된 물건 수의 비율. 낙찰률이 70%라면 10건의 매물 중 7건이 낙찰됐다는 뜻.

[강은현 법무법인 산하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