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2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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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160층), 상암동(130층), 중구(220층), 인천 송도(150층) 등 초고층 개발 프로젝트들이 쏟아지고 있다. 머지 않아 한국이 세계 10대 초고층 건물 중 5개를 랭크시킬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이다. 주거용 건물이 최고층인 기형적인 건축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초고층 프로젝트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래 없이 많은 초고층 프로젝트들이 한국에서 추진되는 논리는 이렇다.
첫째, 한국을 대표하는 초고층 랜드마크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랜드마크를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입지 강화의 수단으로 보고 경쟁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롯데의 초고층 프로젝트도 신격호 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이라는 점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이다.
둘째, 초고층건물을 만들어 주변에 녹지를 대폭 확충한다는 것이다. 용적률을 높여 건폐율을 최소화하면 그만큼 녹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강남구청이 압구정동의 아파트 재건축을 허용해야 한다면 내세운 논리도 바로 녹지확보이다.
셋째, 초고층을 통해 금융기관·IT 등 관련 기업및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대체로 해당 국가, 혹은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 건물에 입주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수익성>
하지만 초고층 건물이 지어진다고 해서 초고층 추진 논리로 내세우고 있는 효과들이 자동적으로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초고층 빌딩인 타워팰리스, 목동 하이패리온, 63빌딩이 랜드마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주거용 건물은 지역경제 기여 효과를 논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더군다나 이들 초고층 건물들은 넓은 녹지를 제공해주지도 못하고 있다. 국내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은 단지내 조경시설은 사실상 폐쇄된 공간이어서 '그들만의 성'을 구축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초고층 건물이 한꺼번에 추진되고 있지만 실제 착공에 이른 것은 부산 롯데월드 뿐이며 다른 사업들은 구체적인 진척이 없다. 우리의 초고층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수익성 혹은 사업성이 없어 사업주체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초고층을 허용해준 상암동 프로젝트가 몇 년째 표류하고 있는 것도 사업자를 찾지 못해서이다. 서울시 용산 철도창 부지에 160층까지 허용한다고 밝혔지만 역시 사업성 문제로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잠실 제2 롯데월드처럼 그룹 회장의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사업 이외에는 사업주체가 나서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는 제2 롯데월드의 인허가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인허가가 초고층 건물 추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초고층 건물의 가장 근본적인 걸림돌은 수익성이다. 개발업체들은 초고층으로 지을 때 들어가는 막대한 건축비를 보충할 정도로 많은 임대료를 낼 수 있는 테넌트를 확보할 자신이 없다. 높은 임대료를 낼 수 있는 기업은 금융회사·증권사·법률 회사와 고부가가치 서비스 업체들이다. 우리는 이런 분야의 기업들이 충분히 발전해 있지 않다고 개발사들은 판단하고 있다.
더군다나 초고층 빌딩만 짓는다고 해서 이런 업체들이 생기는 것도, 외국에서 몰려 오는 것은 아니다. 금융 등 고부가 서비스 산업은 정부의 규제와 우리 경제의 발전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
근본적으로 개발회사는 주거용이 아닌 초고층 건물의 사업경험을 갖고 있지 않고 있다.
초고층은 오피스-호텔-상업시설 중심으로 지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개발회사들은 선분양이 가능한 아파트 중심의 사업에 너무나 익숙해 있다. 오피스-호텔-상업시설 개발과 운영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이 부재하다. 최고층인 타워팰리스와 하이페리온이 사실상 아파트로 지어진 점도 이 때문이다. 개발사들은 선분양이 가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주거용 건물에 집착하고 있다. 현재 지방에서 치솟고 있는 많는 초고층 건물이 아파트이고 화성 동탄·아산 신도시의 초고층 건물 역시 주상복합건물이다.
초고층 건물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기관투자가들도 부재하다. 개발회사 못지 않게 우리의 기관투자가들도 아파트 위주의 사업에 익숙한 탓이다. 이는 성공경험을 가진 개발회사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도시계획상의 문제도 초고층 빌딩의 추진을 어렵게 했다. 상업용지에 주상복합아파트를 허용한 것도 잘못이다. 상업용지에 사실상 아파트나 오피스텔만 지어지도록 방치한 행정당국의 무능이다. 만일 행정당국이 이를 제한했다면 개발회사들이 사활을 걸고, 오피스개발사업에 뛰어 들었을 것이고 그 성공 경험이 투자유치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여의도의 중소기업전시장과 통일주차장 부지의 개발사업도 AIG와 스카이랜이란 외국계회사가 맡고 있다.
<초고층보다는 랜드마크>
현재 초고층 건물을 주도하는 나라는 두바이, 중국, 말레이시아 등이다. 하지만 초고층 빌딩의 원조인 미국의 경우,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시어스타워 이후 이를 능가하는 초고층빌딩이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시카고에서 아일랜드 개발회사가 150층짜리 초고층 주거복합시설을 추진하고 있는 게 거의 유일한 예이다. 이는 기술발전으로 하루가 다르게 초고층 기록이 갱신되고 있어 초고층이 랜드마크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도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고층이라는 기술적 접근법 보다는 지역 경제의 활성화,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빌딩, 지역 활성화의 구심점이라는 경제적·문화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초고층은 랜드마크를 만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일본의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의 경우, 70층이 넘는 일본 최고층이지만 오히려 롯본기힐스나 오모테산도보다는 덜 알려져 있다. 초고층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초고층만으로 랜드마크가 될 수 없다. 영국경제의 견인차 역할로 평가받는 런던의 도클랜드도 초고층 건물이 많아서가 아니다. 고층 오피스타운을 주변에 포진한 주거단지 등이 조화롭게 성사된 것이다. 일본 오사카의 최고층 코스모타워(WTC·55층)는 외국 기업 유치에 실패, 상당수 사무실을 시청 관련 기관들이 차지하고 있다.
<사회적 문화적 접근법 필요>
우리의 고층 건축물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40층 이상의 주거용 건축물 수에서 세계 4위, 세계 100대 고층 주거용 건축물수에서 세계 3위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초고층이 국민들로부터 호감을 받고 있는지, 지역경제활성화와 랜드마크로 기능한지, 과연 지어진다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초고층이 도시의 흉물이나 부유층, 그들만의 성이 아닌 랜드마크나 지역경제의 견인차가 되기 위해서는 좀더 다양한 측면의 연구와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단순히 높이만 높은 초고층이 아니라 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랜드마크적 상징성을 가져야 한다. 이는 디자인의 세련됨, 시민들의 접근성 보장, 다양한 이벤트를 통한 문화적 기능을 강화함에 의해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 추진 초기부터 높이로 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이 갖는 사회적·문화적 기능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수익성(상업성)과 공익성이 상호 모순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버밍햄의 브랜들리 플레이스를 개발한 아전트는 '좋은 디자인이 수익성을 극대화 시킨다', '부동산의 자산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공공용지의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도쿄 롯폰기힐스의 성공 요인중 하나가 모리미술관을 설치하고 전통 정원을 만들어 24시간 개방하는 등 공공적인 기여를 했다는데 있다.
앞으로 이어질 대규모 복합개발은 사회적 논란이 초래될 수 있고 이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공성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공공성은 사회적 기여이다. 초고층이 일반인들의 조망권을 가로막는 사회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공공성을 확보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다.
셋째, 건축물이 문화적 자산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조상들의 건축물로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로마를 부러워만 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우리 독특한 건축물을 남긴다면 백년후 우리의 후손들은 외국으로부터 그런 부러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건물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와 유기적인 연관 관계를 맺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주변지역과 유기적 연관성을 갖지 못하는 초고층은 고립된 성이며 흉물일 수 있다.
다섯째, 짓는 것 못지 않게 관리·유지·활성화·마케팅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 3월 30일 오픈한 도쿄의 복합건물 미드타운이 내건 슬로건은 "21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거리를 만들겠다”, “일본의 가치와 감성을 녹여 만든,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인 거리”이다. 이를 위해 산토리 미술관을 유치하고 건물 주변에 멋진 조경시설을 갖춘 1만평의 공원을 만들어 시민 휴식 공간으로 제공한다. 디자인 전용 전시시설을 설치하고 일본산업디자인협회·대학과 함께 ‘디자인 허브’라는 조직까지 만들었다. 롯폰기힐스의 슬로건도 ‘새로운 문화 도심’이다. 이를 위해 전망이 가장 좋은 건물 최상층부에 미술관을 배치했다. 세계적인 조각가 20명의 작품을 곳곳에 설치했고 연중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건물 자체가 문화 아이콘이 되도록 하는 운영 노하우와 마케팅 철학이 필요하다.
(출처 : 차학봉의 부동산전망대, 20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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