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호아파트 인근 씨티랜드부동산 안시찬(49) 대표. 안씨는 강남 일대에서만 지난 86년부터 20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토지공개념이 논의됐을 때부터 97년 외환위기 이후 집값 폭락 사태와 참여정부 들어서 쉼 없이 몰아닥친 투기바람까지, 안씨는 모두 '현장'에서 겪었다.

20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해오면서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시장이 돌아간 적은 없었다고 말하는 안씨. 그는 정부가 '부동산 안정책'이라고 내놓는 대안을 볼 때마다 매번 답답함이 먼저 앞선다고 한다. 과연 정부가 진정으로 집값을 잡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안씨는 오히려 정부가 집값 상승을 조장하고 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전형적인 '강남 사람'인 안씨는 뜻밖에도 '강남불패'를 믿지 않았다. 20년간 강남 집부자들의 매매를 지켜본 안씨는 그들이 지닌 '한계'가 분명히 보인다고 했다. 그 '한계'를 들여다보면 '강남불패'를 깰 수 있는데도 매번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이를 슬그머니 비껴가고 있다는 것이 안씨의 생각이다.

그래서 더더욱 정부를 믿지 않는단다. 안씨는 '밖에서 보면 보수신문의 '부자 감싸기'에 치여 정부정책의 효과가 반감되는 것처럼 비추지만 실상은 정부가 보수신문과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그 불패의 끈을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 관료들이 부동산 정책을 세우기 전 중개업자 10명만 데려다놓고 이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면 지금처럼 '집값 공황'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안씨의 주장이다.

물론 현 상황을 바라보는 안씨의 생각이 <오마이뉴스>의 시각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 그의 의견이 전부 옳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집값 공황'의 진원지인 강남권에서 20년간 중개업을 해온 안씨의 시선에는 정책 입안가, 민간 전문가들이 보지 못한 '일면'이 담겨 있을 것이다. 지난 9일 서초동 안씨의 사무실에서 3시간 가까이 그와 나눈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날것'으로 전하는 이유다.

'신도시 만들어봐라, 다주택자만 집 산다'

- 20년 넘게 강남에서 중개업을 해온 만큼 그 곳 사람들의 매매를 옆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우선 그들이 뭐가 다른지부터 얘기해보자.

'정부 정책을 철저히 무시하고 기다리고 버티면 곧 집값이 오른다는 생각이 있다. 가끔 강북이나 수도권 지역에 사는 분들이 이 곳에 찾아오곤 하는데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어찌 그리 생각 차이가 나는지 놀랄 때가 많다. 강남 밖에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부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이 곳에선 정부 정책 반대로 하면 부자가 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그동안 숱한 정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강남권은 끄떡없이 건재했다는 경험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더 단단하게 굳혀놓았다.'

- 언제부터 강남 집값이 올랐나.

'거슬러 올라가자면 지난 60년대 경부고속도로 준공 당시겠지만, 자고나면 '억, 억' 소리가 날 정도로 폭등을 보인 것은 2000년 들어서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만 해도 이 곳에서 34평 아파트가 1억5000만원 했다. 이게 지금은 9억~10억원 간다.

2000년 당시 분당·일산 신도시가 고교평준화를 시행하면서 강남에서 신도시로 빠졌던 사람들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도시 시설이나 주거 환경은 분당이 강남보다 월등하다. 분당 신도시가 비평준화를 유지했어도 강남 집값이 지금처럼 폭등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택문제는 이처럼 교육문제와 직결돼있는데도 정부는 현실을 모르고 오로지 물량 공급에만 급급했다. 그러니 강남이 계속 돋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다. 전형적인 개발론자들의 논리다. 신도시 10개, 100개 만들어서 공급을 늘리면 뭐하나. 어차피 2채 가진 사람들이 3채 갖고, 3채 가진 사람들이 4채 갖는 꼴밖에 안 된다. 하지만 공급확대론을 누가 가장 외치는가. 지금 당장 보수신문을 한 번 들춰 봐라. 부동산 광고가 절반은 될 것이다. (실제로 2005년 8월 민주언론운동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광고물량의 45%가 부동산 관련 광고였다-기자 주)

물론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처럼 가옥수 자체가 부족했던 때는 공급확대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당시는 개포동에서 중개업을 했었는데 그 때도 1~2년 사이 집값이 3~4배가 오르는 폭등을 보였다. 당시는 분당·일산·평촌·산본에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폭등세를 잠재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년 전 처음 중개업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보수언론이 늘 내세우는 것이 공급확대론이다. 현재는 주택보급수가 100%를 넘었다. 다만 한 가구가 2채, 3채 보유하다 보니까 공급이 딸리는 것이다.

보수신문들은 요즘 들어 또 재건축 완화를 이야기한다. 정부가 재건축 완화로 돌면 다시 한번 바람이 불 것이다. 과천 지역에 최근 광풍이 불어닥친 것도 그 곳에 강남을 대체할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풍문이 돌면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담보대출로 집값을 잡아라'

- 그렇다고 세제 강화를 통한 집값 잡기도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집부자들은 세금이 무거워지는데도 여전히 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작년에 정부의 8.31 부동산정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여기 고객들 대부분이 이제는 집을 내놓아야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러나 당장 1~2달 뒤면 양도세 중과 등 새 세제 정책이 시행되지만, 이제 와서 이를 걱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결국 보수신문에서 줄기차게 얘기한 '세금폭탄론'도 참 우스운 얘기다.

여기에 와서 한 번 봐라. 그리고 실상을 좀 정확하게 전해라. 강남 집부자 가운데 누가 세금 폭탄을 맞았고, 또 누가 세금 폭탄을 두려워하는지 말이다. 부동산 부자들한테는 세제가 강화되더라도 투기로 번 수익이 좀 깎일 뿐이다. 내년부터 1가구 2주택자에게 양도차익을 50% 물린다고 하지만 이 때문에 집을 내놓겠다고 하는 이들은 없다. 세금 내기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세제강화 정책으로 집값이 떨어지기보다는 가지고 있으면 더 오르기 때문이다.

고객 가운데 한 분이 트라팰리스에 살고 있다. 집값이 15억원인데, 양도세 물고 나면 손에 들어오는 것은 10억원 수준이어서 팔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부 정책에 지지 않고 계속 버티겠다는 말을 한다. 좀 기다리고 버티면 더 오르는데 왜 이들이 지금 집을 내놓겠는가. 공급이나 세금으로 집값을 잡으려 하다보니 늘 역풍에 휘말리는 것이다. 이보다는 강남 집부자들이 지닌 '한계'를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 그 '한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내 고객들 중 70% 이상이 2주택 이상 다주택자들이다. 이들의 연평균 가구소득을 보면 대략 7000만원 안팎이다. 남들은 강남에 산다면 부러워하지만 실제 상당수 강남 사람들의 '삶의 질'은 한심한 수준이다. 말로만 억대부자이지 실제 현금은 없다. 월급에서 대출이자를 갚고, 아이들 사교육비 대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 수도에선 녹물이 나온다. 실제 이들의 현실 삶이 풍요롭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팍팍 오르니까 풍요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중개업소를 하다 보면 친한 고객들의 소득수준은 웬만큼 알 수 있다. 내 고객들만 해도 70% 이상이 담보대출을 안고 주택을 구입했다. 대부분 대출이자를 갚느라 생활비도 빠듯한 이들이다. 이자 부담에 쩔쩔 매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매번 집을 팔려 하다가도 집값이 계속 오르니까 어떻게든 이자를 내가면서 집을 내놓지 않는다. 이 점이 바로 강남 집부자들이 안고있는 '한계'다. 집 2~3채를 가진 억대 부자이면서도 매달 담보대출 이자에 쩔쩔매는 상황이다.

해결책도 바로 이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담보대출을 통한 집값 잡기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거야 여러 파급 효과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고, 담보대출 만기가 됐을 때 상환을 연기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집을 내놓는 것뿐이다. 현재는 대부분이 별 무리 없이 상환을 연기하지만 이를 막는다면 집을 팔지 않고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공급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새로 만드는 것만이 공급이 아니다. 2채, 3채 혹은 그 이상 보유한 사람들이 집을 내놓는 것도 엄연한 공급이다. 새로 지어봐야 제일 먼저 그 곳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은 다주택자들이다. 그러다보면 그 곳 집값이 오르고 자연스럽게 무주택자에게서는 멀어지게 된다. 그런 악순환이 여태껏 계속돼 왔다.

어떤 식으로든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놔야 된다. 그러나 주변 고객들 입장에선 신도시를 지어 공급을 늘리거나 세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지금 상황에선 집을 내놓을 이유가 전혀 없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이들에게 있다.'

- 1가구 1주택자 등 실수요자들에게는 상환연기를 막는 것이 큰 부담이 될 텐데.

'형평성 논란이 있을지 모르지만 1가구 1주택은 예외로 하면 되지 않느냐. 세제 부문도 1주택자와 다주택자를 분리해 과세하는 마당에 담보대출도 못하리라 보지 않는다. 다만, 1가구 1주택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강북 구석에 있는 것도 1주택이고 강남의 트라팰리스도 1주택이다. 한쪽은 평당 400만원이고 한쪽은 5000만원이다. 이 둘을 같이 놓고 봐서는 안 된다. 당연히 같은 1주택이라도 차이를 둬야 된다.'

'보수언론 기자들에게 수차례 얘기했다. 그러나 그들은 핵심 포인트는 늘 비껴갔다. 보수언론은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집값을 잡을 의지가 없다. 이슈가 될 때마다 기자들이 이 곳을 찾는다. 그 때마다 설명을 해줘도 기사화되는 걸 보면 늘 엉뚱하게 나온다. 얼마 전 경실련에서도 동탄 신도시에서만 수천억원의 이득을 건설사들이 부당하게 챙겼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돈이 전부 어디로 갔겠는가. 언론사 광고비로 흘러들어갔을 게 뻔하지 않나.

정부도 마찬가지다. 보수신문의 벽에 막혀 정책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 안에서 들여다보면 웃을 일이다. 이미 이 곳 사람들은 그걸 다 안다. 그래서 정부 정책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가 진정 집값을 잡을 의지가 있다면 이 곳 사람들도 긴장을 하고 움츠러들겠지만, 여기에서 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 오히려 주위에선 정부가 강남 집값을 올려준다고 고맙게 생각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TV에 나와서 부동산 대책을 얘기할 때 제발 패널로 부동산 중개업자 1~2명만 써 달라. 아니면 정부 관료들이 부동산 정책을 세우기 전 중개업자 10명만 데려다 놓고 이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 달라. 그러면 지금처럼 '집값 공황'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 부동산 중개업자 입장에선 부동산이 들썩여야 좋지 않은가.

'주변 고객들과 얘기할 때도 가끔 이런 말을 하면 다주택자들은 어디 가서 얘기 하지 말라고 한다(웃음). 지금 당장만을 놓고 본다면 시장이 들썩이는 게 중개업자에게도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달리다가 한번 꺼지면 정말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 중개업소들도 태반이 같이 죽는다. 보통 한번 불이 꺼지면 회복하는 데 5~6년이 걸린다. 지금이라도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을 해야 한다.'

- 다음 대선 때 정권이 바뀔 경우 달라질 것으로 보나.

'오히려 다음 정권을 보수 진영에서 가져갈 경우 오히려 집값이 잡힐 것으로 본다. 진보든 보수든, 집값이 높다는 것은 모두에게 부담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이 낮아지고, 일자리 부족 현상도 따지고 보면 터무니없이 치솟은 집값에 기인한다. 그만큼 정부로서는 집값 상승이 부담스런 일이다. 그래서 현 정부도 집값 잡기에 나섰지만 사실 도처에 우군이 없지 않았나. 이는 강남 사람들이 여전히 정부 정책에 움츠려 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 정권을 보수 진영이 잡는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우군이 많아 정책을 펴는데 장애가 덜할 것이다.'

 

[자료원: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