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0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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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목동에 사는 김모(45세)씨는 올 초 전세를 재계약하면서 월세로 전환했다. 집주인이 2년 전보다 전세금을 6000만원이나 더 올려달라고 한 것. 김씨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전세금을 올려줄 형편이 안됐지만 자녀 교육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전세금 상승분 만큼 월세를 더 내기로 했다.
김씨처럼 전세금을 올려 줄 돈이 부족하거나 전세 물건이 없어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 소형 평형의 전세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저금리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전세를 놓은 집주인들은 이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아졌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5%에도 미치지 못하고 여기에 이자소득세(16.5%)를 내고 나면 물가상승률 수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자 집주인들은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월세 비중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월세를 놓기 위해 집을 몇 개월씩 비워두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있다. 과거에는 월세가 높은 전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신혼부부나 독신자들이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에서 주로 체결하는 계약 형태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그러나 주택 임대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민은행의 4월 전국주택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신규 계약을 기준으로, 서울지역의 경우 임대차계약 중 월세계약 비중은 전체의 40.5%를 차지했다. 이는 2004년 10월과 비교해 3.5%포인트 증가한수치다. 반면 전세계약 비율은 2004년 10월과 비교해 3.6%포인트 줄었다.
전세,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
사실 전세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제도다. 전세제도는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최근까지 주택 임대시장 계약의 대부분을 차지해 왔다. 집주인은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함으로써 금전적인 부담을 줄이거나 전세금을 은행에 넣어 두면서 이자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세입자는 매달 추가 부담 없이 집값의 반값 정도로 2년 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저금리기조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이런 구도가 깨지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이런 구도 변화는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받아도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지자 예금 이자에 비해 2배가량 수입이 높은 월세로 전환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세입자들도 전세 물건이 없어서 혹은 올려줄 돈이 부족해 월세로 전환하는 추세다. 월세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제도다.
매달 일정액의 돈을 지불하고 주택을 임대하는 방식이다. 임대가 부담이 되면 모기지를 이용해 집을 구입하면 된다. 집값의 20~30%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고 나머지 금액은 저리의 장기 모기지를 이용하면 된다. 모기지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매달 돈을 갚아나간다는 점에서 월세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선진국도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이 사실이나 우리나라보다는 주택을 구입하기 쉽고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이 높아 월세제도가 일찍부터 정착된 셈이다.
월세 증가, 서민생활에 직격탄
선진국처럼 월세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선진화로 가는 길이라며 환영해야 하는 걸까. 결론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선진국도 월세 임대료가 낮은 편은 아니지만 의료나 육아, 교육 등의 사회적인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 월세에 대한 부작용이 거의 없는 편이다. 월세만 부담하면 나머지 부분은 국가의 도움을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사회보장시스템이 선진국에 비해 미비할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월세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25평형 아파트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60만원 선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이 아파트의 전세 시세는 대략 1억원 선. 보증금 2000만원을 제외한 8000만원에 대한 월세 전환이율은 9%에 달한다. 관리비 등을 포함할 경우 월 80만원이 지출되는 셈이다.2억원짜리 전세 아파트를 월세 전환이율 연 9%의 순수 월세로 계약한다면 한 달에 15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봉급생활자들이 감당하기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월세가 임대시장에서 대세를 차지한다면 서민들의 내집 마련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월세를 계속전전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집주인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집주인은 주택구입에 따른 투자 비용을 두 가지 방법으로 회수한다. 하나는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 나머지 하나는 임대로 받은 돈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만약 집값이 예상보다 오르지 않거나 저금리가 지속되면 집주인은 주택을 팔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해 수익을 보전하려 할 것이다. 저금리가 구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형 평형의 월세 전환은 대세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 월세 전환이율 낮아져야
국회는 2001년 말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월세 전환이율을 제한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월세이율 상한선은 연 14%로 시행령에서 정해졌다. 이에 따라 집주인과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하고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전세 보증금 일부 혹은 전부를 월세로 전환할 경우 14% 이내에서 제한을 받는다. 예를 들면, 2억원의 전셋집이 보증금 1억원의 보증부 월세로 전환될 경우 세입자는 연 1400만원 한도에서 월세를 내면 된다. 집주인들이 마음대로 월세금을 올리는 것에 대해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법의 취지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효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현재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억원짜리 전셋집을 월세로 전환할 경우 보증금 5000만원에 월 100만원 선이다. 월세전환이율이 8% 선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의 월세 연이율은 평균 10.7%다. 현실적으로 월세 이율 상한선 14%는 지나치게 높은 수치다. 그리고 집주인이 월세 전환 이율을 연 14% 이상으로 올리고 싶다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을 다시 맺으면 된다. 빠져 나갈 방법이 많아 효과가 제한적이고 오히려 세입자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
월세 전환이 늘어나는 것이 막을 수 없는 추세라고 한다면 제도적인 보완이 절실하다. 월세는 그 나름의 장점도 많이 있다. 전세에 비해 계약기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으며 보증금 비율이 낮아 경매 등으로 전세금을 날릴 위험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목돈 없이 임차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세 이율이 지금처럼 은행금리의 2배 가까이 된다면 세입자들이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월세는 주로 서울 상계동이나 중계동, 분당, 일산 등 중소형 아파트 밀집지역에 집중돼 있다. 결국 서민들이 주 대상이라는 이야기다.
임대 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우선 각 지자체별로 월세에 대한 공정 임대료를 고시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만약 월세 이율이 시중 금리와 비슷한 수준에서 이뤄진다면 서민들 입장에서도 크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전세 1억원짜리 집을 보증금 없이 월 50만원 정도에 계약한다면 월세 시장은 현재보다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월세 세입자를 위한 세제 혜택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볼 문제다. 선진국처럼 임대주택을 늘리는 것도 서민들을 위해서 필요하다. 현재 임대주택은 수도권 외곽에 공급되는 경우가 많아 ‘공급을 위한 공급’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입지여건이 좋은 곳에 임대주택을 지어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서민들을 흡수하는 것도 월세시장을 대비하는 좋은 방법이다.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부동산 팀장]
자료출처 :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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