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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북박이 저금리 시대-유미숙 |best of best

2011-08-13 07:37

http://blog.drapt.com/yunsuhk/347161313188649883 주소복사

1. 부동산은 괜찮을 것입니다
 
선례가 없는 초강대국 미국의 신용 강등 앞에 전세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은 예상대로 일주일 내내 많이 출렁거렸습니다. 시가총액의 32 % 정도가
외국인 지분이니까 당연한 결과이지요. 아시아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더 많이 내렸다
라고 하는 기사가 많은데요. 부분적으로 사실입니다.
 
제가 CNN 등 외국 방송을 자주 보는 편인데 유럽시장을 들여다보면 독일도 유난히
많이 내렸습니다. EU 내 최강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독일 주식시장이 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많이 내렸을까요?
 
한국과 독일시장이 이웃 국가들보다 더 많이 내린 것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양국이 모두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입니다. 그래서 금융위기후 회복이 빨랐습니다.
하지만, 해외 시장이 침체되면 수출에 큰 타격이 옵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후 양국의 주식시장은 상대적으로 많이 올랐습니다.
외국인들 특히 자금 경색으로 돈이 필요한 유럽 은행들과 투자기관의 입장에서 뭔가
팔기는 팔아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많이 오른 한국과 독일 주식을 더 많이 팔게 되는
것입니다. 유럽의 금융기관들은 그리스 등의 부실 채권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금 확충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한국 주식시장이 외부 충격으로부터 흔들림이 없으려면 시가총액 중 외국인의 지분이
20 % 이내로 줄어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민족자본
형성이 덜 된 탓이죠. 주식시장에 비하면 부동산 시장은 해외 충격에 둔감합니다.
부동산 총액에서 외국인 지분은 얼마나 될까요 아무리 잘봐줘도 3 %를 넘지 못할 것
입니다. 외국인이 흔들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한국 부동산의 강점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와서 수도권 부동산이 심하게 흔들릴 때, 제가 만나 본 부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뭐 더 내릴것도 없다. 수도권 집값 오를 때 우리는 손가락
빨고 있었다 아이가. 오른 게 없는데 내릴게 뭐 있노 " 실제 부산 부동산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살짝 움추려 들었다가 2009년 부터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미국 신용 등급 강등 뉴스를 접하면서 저의 생각은 3년전 부산 사람들이 반응한 것과
같은 느낌 이었습니다. 주식시장은 그 동안 많이 올랐으니까 내 릴 것이 있겠지만 수도권
부동산은 3년 내내 밑으로 기었는데 더 내릴 것이 없습니다. 다만 시장을 관망하는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늘어날 수는 있을 것입니다 .
 
 
2. 강해진 한국 - 2008년과 확실하게 다른점
 
이 번 미국 신용 강등 위기를 보면 3년전 금융위기 때와 확연한 차이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채권시장의 움직임 입니다. 3년전에는 외국인들이 주식만 판 것이 아니었죠.
채권도 동시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식시장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을 때
한국 국채를 꾸준히 사 모았습니다. 주식에서 새는 달러를 채권에서 메꾸어주니까 3년전과
같은 외환위기 없이 환율이 대체로 안정되었습니다.
 
요즘 국고채를 사는 세력은 헷지 펀드도 아니고, 외국의 중앙정부나 연기금 들입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3년물 이상의 장기채를
꾸준히 사들이지 않겠지요. 한국 경제가 그 만큼 강해졌다는 증거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 수도권 집값은 2001년부터 시작된 대세 상승의 꼭지점에
있었습니다. 입주물량이 풍부하게 쌓여 전세물량도 많았습니다. 일부 지역은 역전세난도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3년 내내 하락하다시피 하였고 입주물량은
바닥이 나서 전세가격이 2년간 지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 출렁거리다고 전세 수급이 변하나요. 유럽자금이 이탈하면 전세값이 내리나요 ?
급하게 집을 팔아야 할 사람들은 그 동안 대충 정리 하였고 초저금리가 2년간 이어진다 하고
향후 2-3년간은 주택이 부족할 것이라고 하는데 헐값에 집을 팔고 싶겠습니까?
 
 
3. 다시 주목받는 성장 - 성장하지 않으면 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아 겨우 위기속에서 벗어나니까 느닷없이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재정위기가 부각되었습니다. 이들 나라의 국가 부채는 그 절대 규모도 GDP의 100 % 가
넘는 큰 규모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제 성장이 멈췄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국가 빚을
갚을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성장이 없이 제자리 뛰기를 하거나 경제가 축소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부채가 늘어나는 구조가 됩니다. 
 
미국은 어떻습니까? 미국 역시 국가 부채가 이미 GDP의 100 %에 근접했습니다. 그런데
성장 엔진이 예전처럼 가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부채가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한국은 국가 부채율이 GDP의 33 % 내외입니다. LH 공사등의 빚을 정부 부채로
포함한다면(정부는 아니라고 우기지만) 50 % 정도 될 것입니다. 이것도 높다고 항상 아우성
인데  100 % 를 넘나드는 유럽과 미국, 거기에 200 %가 넘는 일본은 어떻겠습니까?
 
흑자 재정을 통하여 부채를 감축하려면 실질 성장을 하든 인플레를 통한 명목 성장을 하든
성장하지 않으면 부채를 줄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부채가 많은 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경제의 국제 경쟁력이 약하여 실질 성장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돈을 풀어서 인플레를
일으겨서라도 성장해야 합니다. 유럽중앙은행이 개입하여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를 사들
이고 있습니다. 국채 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그렇게 풀린 돈들이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영국은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하여 긴축 재정을 시행하고 있는데 결국 젊은이들의 일자리
감소를  가져오게 되었고, 누적된 경제 불만이 폭발하여 런던에서 방화와 약탈이 발생하였
습니다.  유럽의 일부 경제학자들도 지금 필요한 것은 긴축이 아니고 성장인데 2-3년 전에
처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4. 전대미문의 북박이 초저금리는 부동산시장에는 큰 축복이겠죠
 
상식을 깨는 깜짝 놀랄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미국 연준이 2년간 기간을 명시하여 제로
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초유의 일이라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기축 통화를 사용하는 미국만이 결행할 수 있는 조치입니다.
기축 통화국이 아니면 결코 이런 위험한 방법을 선택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버냉키의
생각에 반대를 한 세 사람의 연준위원들이 걱정한 것은 인플레이션 이었습니다.
 
연준 발표 후 저는 그것과 관련된 많은 기사와 글을 읽었습니다. 한결같이 인플레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미 연준이 2년간 제로 금리로 동결된 상황에서 한국은행 금리는 뛰어봤자
벼룩 수준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금리 차이가 큰 상황인데 향후 쉽게 금리를 올리지도
못하겠지만 설사 금리를 올린다한들 시중 실세금리가 쉽게 오르겠습니까? 금리를 올리면
달러 캐리를 포함한  외국 돈이 더 많이 몰려 올테니까요. 게다가 외국 돈이 몰려들면 원화
절상이 되고 수출이 둔화되면서 실업율 문제가 대두되는 구조이므로 금리 정책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
 
은행들은 이미 역마진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여유 자금으로 즐겨 찾는 국고채
3년물의 금리가 CD 금리를 하회하고 있으므로 은행들이 역마진을 벗어나려면 조만간에
예금 금리를 인하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의 중앙은행 격인 연준이 향후 2년간 저금리를
선언하였는데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금을 사든 원자재나
부동산을 사든 인플레이션 헷지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상황이 올 것이라 예상됩니다.
 
인플레이션의 초기 단계는 사람들이 지갑을 닫기 때문에 부동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인플레이션이 상당기간 진행되어 경제 곳곳에 만연해지면 믿을 것은
실물자산(특히 토지) 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질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과거 경험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금덩어리가 좋습니까? 땅덩어리가 좋습니까? 저는
살 수 있는 돈만 있다면 땅덩어리를 더 많이 사고 싶습니다.
 
 
5. 금융위기에 신경을 써느라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지 않나요?
 
주택시장 특히 전월세 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가 심각한데 금융위기 속에서 잠시
잊혀지고 있습니다. 여당에서 조만간에 전세대책을 발표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순리를 거스르는 경악할 내용이 아니기를 바랄
뿐 입니다.
 
다른 주택은 제외하고 자료가 비교적 정확한 아파트를 기준으로 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수도권에서 한 해 평균 16만호 정도의 아파트 순증이 있었습니다.
년평균 4-5만호의 아파트가 멸실된 것을 고려하면 20만호 이상의 새 아파트가 매년
수도권에 공급(입주)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금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은 신규 입주 아파트가 년평균 10만여 호 수준이고
멸실을 고려한 순증은 이보다 훨씬 줄게 됩니다. 금년도 수도권 분양 물량을 보노라면
2014년에도 입주 물량 부족이 지속될 듯 합니다.
 
UN이 발표한 국가별 인구 전망을 보면 지난 해까지 한국의 인구 정점은 2024년이
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금년에 이것을 수정하여 2030년에 총인구가 정점을 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 아마도 지난 해 11월 인구센서스 조사 결과를 보고
UN의 전망이 수정되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심각하게 줄어드는 입주 물량, 수도권 인구 및 가구 수의 증가, 세계 경제에서 서열이
상승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 2년간 보장된 사상 초유의 초저금리 등 이런 것들이
어우러지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
 
이번 2차 금융위기후 일부 언론 기사를 보면 부동산은 괜찮을까 하고 걱정하는 기사
또는 노골적으로 폭락이 우려된다 는 식의 기사도 있습니다. 한국 부동산의 정확한
현주소도 잘 모르면서 막연히 3년 전에 리마브라더스 사태 후와 비교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상황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항상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부동산은 괜찮을 것 같으니 주식시장이나 신경써라" 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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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50년과 부동산7 -김현정 |best of best

2011-08-05 16:26

http://blog.drapt.com/yunsuhk/347161312529211570 주소복사

김현정(elly0526)한국50년과 부동산7
 
조회 1409   등록일 2011/08/02  |  추천 21
 
여기에 직장인들 계시면, 그중에서 나이 50이 넘으신분 계시면 아마 지금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을 잘 아시겠죠.

1987년인가 기억하네요.
우리 막내 도련님이 월급이 많이 올라서 왔더군요. 그 당시 우리 도련님이 금성전자 구미에서 근무하고 있었죠.

1980년부터 1987년까지 8년동안인가, 기업들의 임금이 모두 동결되었답니다. 이유는 왜인가요? 물가를 잡기 위해서 강압적으로 그리했죠.
그때 9급공무원 월급이 아마 9만원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네요. 대기업 사원이 29만원이 조금 넘었고요. 이를 18개월치로 주어 1년 년봉으로 환산하니, 대략 1년 년봉이 500만원이 안되었겠군요.

어찌 아냐면, 우리 막내 도련님이 81년도에 LG에 입사를 하면서 제가 돈을 관리해주어서 아는 것이죠.

직장생활 잘 하다가, 85년도에 사업을 한다 정리하고, 내가 모아두었던 돈으로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맞아서 무일푼이 되었답니다. 그래 너무 안쓰러워서, 가지고 있던 1,000만원을 도련님께 드리며, 이제 장가도 가야하고 하니 정신차리고 돈 벌어야 한다고 하면서, 우선 방법을 일러주었죠. 뭘 하려해도 밑천이 두둑해야하니, 우선 밑천부터 모으자고요.

87년인가? 그때 구미쪽 16평형 주공아파트가 1580만원인가? 시세가 했을겁니다. 전세가1300만원정도 했고요. 그때 우리 도련님한테, 그돈으로 집을 사라했죠. 그 당시 주택이 너무도 모자랐으니까요. 그래서 1000만원을 가지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사고, 다시 전세값을 받아서 다시사고 해서 7채인가를 샀던 것 같네요.

2년만에 딱 2배가 되었죠.

그 돈을 밑천으로 다시 장사를 시작해서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동업도 이제는 안하고 열심히 하더니만, 많은 돈을 벌었답니다.

이런 부동산 투기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니라도 그 누군가는 분명히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누군가는 분명히 이득을 취할 것을, 내가 먼저 취한 것뿐이랍니다.

자랑하려고 이 글 쓴 것이 아니겠죠?

세상은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전할 뿐이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매번 과거에 얽매여서 예전에는 어떠했는데, 요즘에는 살기 힘들다고 불평을 늘어놓죠. 이런분들 어느 정권 어느사회때나 불평불만이 없었던 때는 없더군요.

최근 50년이 지난 500년보다 더 많은 발전이 있었죠?
그러면 본인 스스로는 그 발전에 맞추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도 잘 생각해봐야 한답니다. 세상은 발전해 나가는데, 나는 스스로 제 자리에 머물고 있어도 누가 10원짜리 한장 주는 사람은 없답니다. 그러기에, 과거나 미래에나 남들보다 앞서가려면, 많은 생각을 하고 또한 많은 노력을 해야겠죠.

자 지난번에 4공화국까지 이야기 했나요?
그럼 5공화국 이야기를 오늘부터 시작해야겠네요.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하나회가 79년 12월 12일에 드디어 일을 냈답니다. 군부가 나라를 다시 장악하고 구테타를 일으킨 것이죠. 이후, 12월 21일 최규하를 내세워 제 10대 대통령에 취임을 시켰죠. 바로 허수아비 대통령을 내세우고 그 이후의 일을 도모한답니다.

이에 곳곳에서 군부의 정권장악을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일어났고, 1980년 5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바로 그 유명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이때 일어나게 된답니다.

5월31일에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드디어 실제적인 정권을 장악하게 되죠. 1980년 9월 1일 전두환은 최규하를 하야시키고 대한민국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답니다. 바로 이때가 5공화국이 정식으로 출범한 때이죠.

정권을 세울때는 무릇 ‘명분’과 ‘정당성’이 필요했기에, 박정희 시대를 ‘부패와 비리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본인 스스로를 ‘정의사회구현과 복지사회건설’내세웠죠. 재미있는 것이죠. 그래서, 박정희 본인의 장기집권을 위해 만들었던 유신헌법은 폐지하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처럼 쇼를 했죠. 그때 정치거물인 김영삼, 김대중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민주한국당과 한국국민당 등 관제야당을 내세워 정당정치를 형식화 한 것뿐이죠.

그래도, 국회의원 1/3을 대통령이 추천하게 한 제도를 폐지하고, 대통령의 일반법관 임명권 폐지하고 대법원장에게 그 권한을 가지게 한 것은 사법권 독립의 어느정도 시작은 되었었죠. 대법원장 추천은 하지만 정권의 손아래 있었기 때문에 형식적인 것이었지만요.

이전 정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죠. 이때, 경제적으로도 국민들이 힘들었던 시기였답니다. 1978년 제 1차 석유파동이 끝나고, 79년초에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2차 석유파동이 다시 일어나게 된답니다. 1년만에 2배가 올랐으니까요.

79년말에 터진 2차석유파동은 경제성장률도 망가트렸죠.
79년 6.4%이던 성장률이 80년 -1.5%로 떨어졌답니다. 민심이 흉흉하기가 이를 때 없었죠.

돈이 돌지 않으니 경제는 꼬꾸라지고 있었고, 새로이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어떻게든 민심을 잡아야했죠. 내수진작과 실업구제의 두가지를 가장 빠르게 잡는데는 주택경기 활성화 이외에 더 좋은 것은 없겠죠.

그래서 80년 9월 건설부가 ‘주택 500만 가구’ 건설 계획을 내 놓게 된답니다. 그당시 우리나라 주택수가 530만 가구정도 되었으니, 그만큼 더 짓겠다는 것이었죠. 물론 당시에는 이구동성으로 불가능하다 했답니다. 실제로 1987년 전두환 임기말까지 지어진 주택은 176만가구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분당 일산등에 나중에 노태우가 어느정도 목표를 달성했죠?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건설부가 내놓은 ‘주택500만가구’ 건설계획은 1981년부터 91년까지 10년간 14조원을 투입해서 공공주택 200만 가구, 민간주택 300만 가구등 모두 500만 가구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답니다.

이제, 여기서 부터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되겠죠?
주택경기활성화에는 첫째로 투기가 기본적인 문제일 터이고, 둘째로 개발 계획의 범위와 셋째 정책의 기조가 어찌 변했는지도 보면 할 이야기 다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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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50년과 부동산6 -김현정 |best of best

2011-08-05 16:24

http://blog.drapt.com/yunsuhk/347161312529062362 주소복사

김현정(elly0526)한국50년과 부동산6
 
조회 1473   등록일 2011/08/02  |  추천 28
 
중국 북송때, 사마광이 쓴 ‘자치통감’을 보면 재미난 부분이 나오죠. 제갈량이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오장원에서 ‘사마의’와 ‘제갈량’의 대치하고 있는 부분이 나온답니다. 번번히 싸움만 하면 지는 사마의는 성문을 걸어 잠근 체, 수개월 동안 대치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제갈량이 사마의를 모욕하고, 책략을 써도 사마의는 성문만 굳게 걸어 잠근체 나올 생각을 하질 않았답니다.

그래서, 제갈량이 사마의 진영으로 사자를 보내, 사마의의 생각을 알아내려 했죠. 하지만, 사마의는 전쟁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은체, 제갈량의 일상생활만을 물었답니다. 그래서 사자는 자신의 상관인 제갈량의 자랑을 늘어놓기만 했죠.

“제갈공께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자는데 하루에 20판(板)이상의 징벌(懲罰)문제를 모두 친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먹는 양은 몇 승(升)에 이르지 못합니다.” 판이란 공문서를 쓴 목간의 단위죠. 목간 20판이 얼만큼인지는 몰라도 매일 산더미 같은 이 서류를 검토하였으니 몸이 버틸수가 없었겠죠. 또 하루에 몇 승(升)을 못 먹었다니 체력이 다하는 것은 일찌감치 알아챘을 것이고요.

사마의가 말하길, “제갈공명은 밥은 적게 먹으면서 일은 번거롭게 많이 하고 있으니, 그가 능히 오래 버틸 수가 있겠소?” 라 했고 이는 맞아 떨어졌답니다. 그래 제갈량이 병이 나서 죽고, 사마의가 이를 알고 성문을 열고 공격을 했으나, 제갈량의 탈을 쓴 장수를 앞으로 내세워 사마의 군사들이 도망가게 했죠. 이것이,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이겼다.’라는 내용이랍니다.

자 여기서 이제 봐야하겠죠.

제갈량은 분명 사마의보다는 몇 수나 위인 전략가이고 지략가는 역사서나 소설의 내용만을 토대로 보았을 때 맞답니다. 그러면, 개인적인 모양새로만 보았을때, 제갈량이 사마의보다 성공한 사람이냐? 제갈량과 사마의 중에 누가 더 큰 그림을 그릴줄 아냐? 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촉의 관우가 죽고, 그 이후에, 장비, 유비가 죽은 후에 유비의 어린 아들 유선이 황제로 올랐죠. 그러니까, 나라의 운명이 맡겨진 것이죠. 사람이라는 것이 길어야 100년인 것을 촉의 운명은 유비가 나라를 세운 뒤 기껏해야 몇십년을 제갈량에 의해서 밖에는 지켜질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사마의는 어떠했나요?
사마의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249년까지 큰 아들인 사마사를 비롯한 그의 아들들이 그 뒤를 잊는 것을 시작으로 긴 안목의 틀을 짰답니다. 사마사가 병으로 죽자, 동생 사마소가 다시 실권을 장악하고, 후에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이 위나라의 황제를 몰아내고, 진나라를 세워, 위나나와 촉나라 그리고 오나라를 멸망시키죠.

둘 중 똑똑한 것과 지혜로운 것은 분명 사마의보다는 ‘제갈량’에 있다는 것을 누구도 반대하지 않겠죠. 하지만 둘의 차이는 단 한가지랍니다.

자신이 능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냐, 아니면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냐죠.

능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비록 개인의 능력이 떨어지도라도,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삶을 가진답니다. 하지만,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사람은 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데 그 한계가 있죠.

물론, 제갈량이 수동적이라는 사람은 아니랍니다. 하지만, 사마의와 비교했을 때, 보여지는 것만으로 수동적이 었다는 것이죠.
글쎄요.
만일, 사마의가 유비의 밑에 있었다면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의 욕심이나 그릇은 누구의 밑에 있다고 바뀌는 것은 아니라 보여지네요.

결론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후대에 나라를 세운 사마의가 조조보다 훨씬 더 긴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만들었다. 라고 지으면 될까요?
이정도 결론만 지어도 생각이 많이 깊으신 것이겠죠.

저는 이곳에서 제 나름대로의 결론도 지어보았답니다.

무릇 사람의 성향이나 환경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니,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제갈량은 스스로에 힘써 그래도 촉의 승상까지 오르며 후대에 이름을 길이 남기고 있죠. 사마의나 그리고 삼국지에 나오는 많은 장수들, 모사들은 그들의 능력이 조조나 유비, 손권에 모자라서 그곳까지밖에 못 오른 것이 아니랍니다. 태어날 때 부터, 자신의 그릇이 크기가 그만큼이었는데, 그래도 스스로에게 힘써 후대에 이름을 남길 정도가 되었다면 자신의 그릇을 다 채운 것이나 마찬가지죠.

모든 사람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다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누군가는 똥을 치워야하고, 쓰레기도 치워야하며, 백정이 있어야 고기도 먹을 수 있는 것이죠.

내 그릇의 크기가 얼만큼인지 확인해보려면, 하루하루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시지 마시고, 진실로 내가 열심히 살았냐를 되뇌고 물어보세요.
답은 가까운 곳에 있을 테니까요.

60~70년대를 거치면서 새마을 운동과 1~2, 3차 경제개발 5개년 개획이 진행되었고, 이곳 저곳에서 국토에 대한 종합개발이 수립되고 진행되었죠.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절대적인 공급부족을 타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불도저식 부동산 개발이 진행되었고, 60년대 기업이 주도로 하는 부동산 투기에서 70년대 일반인이 주도하는 부동산 투기까지 진행되었답니다.

하지만, 부동산이 오르면 ‘규제와 세금’으로 막았고, 다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면 규제완화라는 카드를 씀으로써 이른바 ‘냉온탕’을 왔다 갔다 했답니다.

이런 정책은 어떤가요?
올 3월까지 DTI 한시적으로 폐지한다고 했죠?
다주택 양도세로 연장했었고요.

정책이 일관성이 없이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하는데, 누가 믿을까요?
지금도 그렇죠?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피해보는 것은 절대 돈 있는 사람들이 아니랍니다. 집한채 장만하려고 하는 일반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죠.

지금과 같은 이러한 일관성없는 정책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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