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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부자의 탄생, 30년 공무원 생활 끝에 200억대 빌딩주로 |기타

2011-05-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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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기도하라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 '빌딩부자의 탄생' 

#30년 공무원 생활 끝에 200억대 빌딩주로

세월 앞에 장사 없다

그로부터 30년 후. 그는 진짜 빌딩부자가 되었다. 그것도 강남에 200억대 빌딩를 가진 부자가 됐다. 30년 전 그 꿈이 지금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세월의 힘이다. 그의 꿈은 나이가 많다. 무려 30년간 ‘묵은 꿈’이다. 그는 “꿈이 있느냐 없느냐는 2~5년 동안은 차이가 없다”며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에는 눈에 띠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오랜 세월 매진하는 사람은 당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30년 전 비슷한 출발 선상에 섰던 그의 동료들은 여전히 그 자리다. 그가 화곡동에서 25평 전세로 신혼을 시작할 때, 직장 동료는 50평에서 자기 집을 얻어 살았다. 그가 강남의 200억대 빌딩부자가 될 때 그의 동료는 여전히 화곡동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꿈이 없으면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급급해 인생이 지그재그로 걷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꿈이 있는 사람은 한 단계 한 단계씩 밟아 나아갑니다. 처음엔 그 차이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중에 이 둘의 차이는 엄청 납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오래토록 스텝 바이 스텝. 그가 알려준 빌딩부자의 ‘비밀’이다.

그가 자산을 불린 과정도 그렇다. 한 계단씩 착실하게 밟아 여기까지 왔다. 처음 그의 재테크 수단은 아파트였다. 내 빌딩을 짓기 전까지 그는 10번도 넘게 이사를 다녔다. 신혼 생활을 화곡동 25평 전세 아파트에서 시작한 그는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인근에 35평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자기 명의로 된 첫 부동산이었다.

이후 다시 목동으로 또 다시 구파발로 이삿짐을 쌌다. 7번의 이사 끝에 간신히 강남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는 계속 됐다. 처음엔 방배 1동에 살다가 방배 3동으로 옮겼다. 마지막으로 둥지를 튼 것이 지금 살고 있는 서초동이다. 10여 차례의 이사 끝에 간신히 주거의 안정성을 확보한 셈이다.

그는 빌딩을 짓기 전 수차례 집을 옮겨 다니며 ‘집 테크’를 했다. 중간에 송파구의 한 아파트 입주권을 사서 재테크를 하기도 했다. 그는 “70~80년대만 해도 아파트로 재테크를 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며 “어떨 때는 손해를 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이익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빌딩에 '장인의 숨결'을 불어넣어라

공실률 0% 빌딩. 비결이 뭘까. 그는 ‘장인 정신’을 가지고 이번 빌딩을 지었다고 했다.

강남의 이면도로라는 약점을 안고 있지만 인근의 동일 규모 빌딩 중에서는 최고의 빌딩을 짓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임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땅에 누가 지어도 이보다 잘 지을 수 없게 짓도록 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자본을 무한정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의 안목을 빌려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투자를 했습니다.”

앞선 두 번째 빌딩에서 깨우친 노하우들이 이 빌딩에 집약됐다. 그는 “돈을 무한정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대로 투자를 해야겠다는 마음 자세로 임했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동일 규모 중에서는 최상의 건물을 지어야겠다는 ‘장인 정신’으로 임한 것이다. 그는 “싸게 지어서 임대료만 받겠다는 빌딩과 건물주의 철학이 반영된 빌딩은 천지 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은 것 하나까지 치밀하게 신경을 썼다. 조경 역시 심의 통과를 위한 보이기식 조경이 아니라 진정 임차인들을 위해 세세하게 배려했다. 이같은 그의 마음 씀씀이는 빌딩 옆 쓰레기 집합시설에서도 드러난다. 빌딩 바로 옆에 한눈에 보기에도 거북한 쓰레기 시설이 있었다. 이에 그는 공동의 시설이지만 자기 돈을 들여 빌딩과 비슷한 가건물을 지어 이를 덮어 버렸다. 그는 “빌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 수 있는 투자였다”며 “내 빌딩과 조화를 이루는 환경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빌딩부자의 탄생'  저자 =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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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상가 40가구 샀던 무속인의 몰락- 인사이드스토리 |기타

2011-05-1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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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빚에 쪽박난 신통력…살던 집도 경매

외환위기 직후 집값 90%까지 대출받아 베팅
두 배 올랐지만 안 팔다가 이자 못내 몽땅 날려
서울 강남에 아파트 36가구와 상가 4개를 사들이는 신통력(?)을 발휘했다가 국세청의 세무조사 표적이 됐던 개포동 무속인 Y씨(여 · 61)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의 모든 부동산경매 등으로 날린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중앙지법에 Y씨 소유의 개포 · 일원동 소재 아파트 3가구가 18일 경매에 나왔다. 경매시장에 나온 Y씨 소유 부동산 수는 이번 물건까지 모두 20가구로 늘어났다. 2008년부터 경매처분되기 시작한 Y씨 소유 강남 아파트는 이번 경매가 사실상 마지막 물건일 것이라고 경매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통상 가장 나중에 경매 처분되는 부동산은 본인이 끝까지 살던 집이나 영업 장소다. 이날 경매 처분된 개포동 소재 저층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그의 영업장(○○○보살운명상담소)이자 아파트 매집에 나서기 전부터 살던 집이다.

경매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매각된 20개 부동산의 사건번호가 모두 '2008'로 시작한다"며 "2008년 금융기관에 의해 무더기로 경매로 넘어간 부동산이 주로 그해에 많이 팔렸고 일부는 시차를 두고 매각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20개 부동산은 이미 시장에서 매각됐을 가능성이 높다. 2005년 6월 국세청 세무조사 당시 Y씨는 이미 아파트 7가구를 팔아 13억원의 차익을 남긴 상태였다. 또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된 직후 직 · 간접적인 매도 압박을 느껴 아파트 10여가구를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매 전문가들은 Y씨가 애지중지하던 부동산을 모두 처분하게 된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추정하고 있다.

우선 과도한 부채가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Y씨는 부동산 매입을 위해 134억원의 금융권 대출을 이용했다. 경매된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을 분석해 보면 거의 예외없이 집값의 90% 정도를 대출받았다. 대출을 최대한 받기 위해 제2금융권을 주로 활용했다. 집값이 2007년 급락세로 돌아서고 거래마저 끊기자 이자를 낼 돈도 없고,팔리지도 않아 경매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국세청 세무조사로 상당한 금액을 추징당하면서 유동성이 부족해졌을 개연성도 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Y씨가 집을 집중적으로 산 시기가 2001~2002년이어서 집값이 두 배 이상 오른 상태였다"며 "현금 부족으로 흑자 도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Y씨의 부동산 매입시기는 최고수 반열이라고 평가했다. 남들이 매입을 꺼릴 때,남의 돈으로,버블 세븐 핵심지역에,40가구나 베팅했다는 점이 근거다. 등기부등본을 분석하면 그가 집을 사 모은 시기는 1999년~2005년 4월 사이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사들이기 시작해 집값 상승 초기단계인 2001년과 2002년에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2002년 2월엔 한 달간 4가구를 매입하기도 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국세청 세무 조사 당시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부동산 전문가들이 '진짜 전문가는 Y씨'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Y씨는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매도 시기를 놓친 게 결정적 패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정부 정책에 맞선 점도 패착이다. 노무현 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를 과소평가했고,다주택자를 겨냥한 국세청 세무조사의 표적이 되면서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남이 먹을 것도 남겨두고 어깨에서 팔겠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욕심이 지나쳤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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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지대와 부동산 중개업의 미래 -박원갑 |기타

2011-04-1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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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부동산업계를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부동산중개업소가 우리나라처럼 많지 않다는 점이다. 대로변에 ‘아파망’과 같은 일부 중개법인 간판만 보였다. 부동산버블 붕괴이후 20년 간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골목의 중개업소들이 대거 사라졌기 때문이다. 상당수 중개업소들이 중개법인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에도 대호황기가 최근 마무리되고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부동산시장의 브로커인 부동산중개업은 거래로 먹고 사는 서비스업종이다. 일본처럼 버블이 붕괴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지금처럼 거래가 줄어들면 일선 중개업자들의 먹거리가 사라진다.

 한때 부동산중개업 자격증은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였다. 경제적 지대란 제도적 규제로 공급이 제한되거나 비탄력적이어서 보유자가 가치 이상으로 얻는 몫이다. 대표적인 경제적 지대로 진입 장벽이 높은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이 꼽힌다. 하지만 부동산중개업 자격증은 공급이 넘쳐나면서 경제적 지대가 거의 사라졌다.

2009년말 현재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지 총 28만6534명 중에서 26.0%인 7만4638명이 개업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중개인(9090개)과 중개법인(411개)이다. 전체의 공인중개사 자격증 중 70%이상이 장롱면허로 잠자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중개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중개업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한집 건너 중개업소가 있을 정도다. 이런 와중에 거래가 줄어들고 가격까지 떨어지면 심각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거래가 많지 않아도 중개업소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0년 초반 서울 강남에 국민주택규모인 85㎡ 아파트가격이 3억 원 정도에 형성됐지만 지금은 10억 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가격이 떨어지면 수지를 맞추기가 더욱 어려워져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일 수 있다.
 
10년 전 미국에서는 인터넷 보급으로 중개업의 위기를 걱정했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대 호황 사이클 이후의 시장 침체에 따른 중개업의 위기를 걱정해야할 판이다.

이제는 골목길 중개업소에서 앉아 고객을 기다리는 단순한 중개로서는 불황기에 살아남기 힘들다. 앞으로 부동산은 개발의 시대에서 서서히 관리의 시대로 넘어갈 것이다.

그래서 중개업은 단순한 중개에서 벗어나 고객의 빌딩, 토지, 상가 등 각종 부동산자산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부동산자산관리업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부동산중개업자가 아닌 부동산자산관리업자로서 처신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의 전문지식에 대한 깊이뿐 아니라 금융지식, 수익률 분석, 리스크관리에 대한 스펙을 늘려야 한다.

 또 앞으로 중개법인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돼 미국이나 일본처럼 대형 중개법인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최근 부동산중개법인이 모든 형태의 주택과 상업용 건축물에 대한 분양업무 대행을 허용했다.

앞으로 부동산중개법인은 부동산개발, 세무, 법무, 부동산컨설팅, 부동산자산운용, 국공유지매매·임차대행, 건물임대관리 등을 담당하는 고부가가치의 종합서비스산업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변화의 회오리가 곧 닥칠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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