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축복인가 재앙인가>

 기자는 스스로 평가하면  신도시 적극 추진론자였다. 정부가 신도시를 만들지 않더라도 결국 주택수요 때문에 주택은 지어지고 난개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일본의 부동산 시장을 관찰하면서, 선진국의 주택 정책과 이론들을 연구하면서 생각이  상당히 바뀌었다.

  그렇다고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신도시 불가론은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신도시 만능주의’에서 ‘신도시 신중 추진론’으로의 입장 전환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처럼 신도시를 지어대는 나라는 없다. 일본은 신도시 추진을 포기한지 꽤 오래됐다. 영국-프랑스 등 OECD 국가 역시 신도시 추진에 대해서는 굉장히 신중하다.   OECD 국가 대부분이 우리와 같은 집값 급등현상을 경험했지만 대규모 신도시 추진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OECD 국가(즉 좀 산다는 국가들)가 신도시 건설에 대해 왜 신중한 입장일까. 그것은 고령화와 지속가능한 성장, 산업구조의 변화 때문이다. 

 인구의 고령화, 인구 증가율의 둔화,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신도시는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한다.   사회적 비용이란 교통량의 증가, 중심 시가지의 쇠퇴, 도시 유지관리 비용의 증가 등을 의미한다. 특히 지방의 신도시는 지방도시에 축복이라기 보다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게  여러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지방에 있어서 신도시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주장을 하는 연구자들의 논거는 이렇다.

 신도시개발은 지방도시 중심시가지의 상권 쇠퇴 및 도심 공동화 현상을 초래한다. 상당수 지방도시는 인구 고령화 단계를 거치고 있으며 머지 않은 장래(이미 시작된 지역도 있을 것이다)에 인구감소기에 접어들게 된다.  인구 정체 및 감소기에 신도시를 건설할 경우, 중심 시가지의 공동화를 초래한다. 신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도로-학교 등 인프라 투자를 해야 한다. 인구가 전반적으로, 정체 내지 감소하는 상황에서 신도시 건설은 지자체에  엄청난 재정적 부담이 된다. 더군다나 지방 도시에 있어서 중심시가지 쇠퇴는 지방도시의 세원감소, 지역 경제의 위축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신도시 정책은 인구 성장기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인구 저 성장기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중심시가지의 쇠퇴, 도시 유지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는 재앙이라는 게 이들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이른바 OECD국가들은 신도시개발보다는 중심시가지의 재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반박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신도시는 건설에 3~5년이 걸린다. 적어도 10년.2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해서 신도시 건설계획을 짜야 한다는 점에서 OECD국가들의 정책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아직은 성장여력이 있는 수도권 신도시는 어떤가. 일본 동경 주변의 신도시에서도 인구감소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동경권의 신도시 인구의 감소현상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자가 보기에 가장 적합한 분석은 ‘가족 역할 변용론’이다.  일본의 60~80년대는 가족 모델은 ‘샐리맨 전업주부 자녀’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이제 샐러리맨 가장의 수입으로는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종신고용의 붕괴로 남편만 바라보기에는 너무 불안하다. 더군다나 여성도 전업주부보다는 적극적으로 사회진출을 바라고 있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맞벌이 부부의 증가 현상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인구가 OECD 평균으로 보면 60% 정도이다. 한국도 비약적으로 늘어나 50%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OECD 평균에 비해 서는 여전히 뒤떨어진다. 

여성의 취업과 신도시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신도시는 취업의 기회가 제한적이다.  취업의 장은 도심에 밀집해 있다.  시간의 효율적인 이용이 맞벌이를 하는 부부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맞벌이 부부는 효율적인 시간이용을 위해 신도시보다는 직장이 많은 도심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나타나는 도심회귀 및 신도시의 공동화 현상도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신도시에 대해 재앙과 축복이라는 식의 이분적적인 시각은 곤란하다. 하지만 정확한 인구전망,  산업구조 변화, 가족구조의 변화에 기반해 신도시를 추진해야 한다. 고령화에 대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다. 그러나 고령화의 직격탄을 받을 국토-도시-주 택 구조와 관련한 논의가 별로 없다는 게 아쉽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 숱하게 추진되는 신도시에 대해 다시 한 번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