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각국의 정책 당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과감한 금리 인하와 더불어 유동성 공급을 크게 늘리고 있다. 미국이 연방기금금리의 목표 수준을 사상 최저수준인 1%까지 내렸고 지난 주에는 영란은행과 유로중앙은행(ECB)도 기준금리를 각각 3.5%, 3.25%로 인하했다.

 

일본은행은 금리를 0.3%까지 내려 사실상 ‘제로’ 금리 정책을 채택했다. 우리 한국은행도 10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5.25%에서 4%까지 내렸다. 최근 들어서 각국의 실물경제가 침체에 빠질 정도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금리 인하 추세는 더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과감한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은 지속되고 실물경제의 침체는 더 깊어지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부 경제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졌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금리가 더 이상 낮아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경제 주체들은 화폐를 보유하고 소비와 투자를 늘리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찍이 케인즈는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졌을 때 재정정책만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통화 증가(금리 인하)는 시차를 두고 경제 변수에 영향을 준다. 우선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풀었을 때 시중은행은 넘치는 돈으로 채권 등 유가 증권에 투자한다. 그래서 금리가 하락하는데 이를 소위 유동성 효과(liquidity effect)라 한다. 금리가 낮아지면 가계는 시차를 두고 소비를 늘리게 된다. 낮은 금리와 더불어 소비 증가는 투자 증가를 야기하여 경제성장률을 높이는데, 이를 소득 효과(income effect)라 부른다. 이렇게 해서 수요가 증가하면 결국 물가가 상승하고 다시 금리가 오르게 되는데, 이를 피셔 효과(Fisher effect)라 한다.

 

 

 

경제 활동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유동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유동성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얻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피셔의 화폐 수량설에 기초하여 적정 통화 증가율은 경상 GDP 성장률과 유통속도 변화율의 차이로 사용한다.

 

이 글에서는 유통속도 변화율이 단기에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적정 통화공급을 광의통화(M2)와 경상 GDP의 비율(이를 ‘마샬 k’라고 한다)로 사용하였다. 그 다음에 ‘마샬 k’의 추세를 호드릭-프레스코트 필터(Hodric-Prescott Filter)를 이용해서 도출하고, 이 추세에서 위로 벗어나면 잉여유동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는 통화정책이 긴축적인 시기이다.

 

아래 <그림 2>는 OECD의 잉여유동성과 MSCI 세계 주가 변동률을 함께 그린 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미국이 지난해 9월부터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 이후 선진국의 잉여유동성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0년 들어 IT 버블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미국 등 주요 국가가 금리를 인하했고 통화공급을 크게 늘렸는데, 그 이후 세계 주가가 급등했었다.

 

최소한 내년 1분기까지는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진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통화공급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앞으로도 잉여유동성은 더욱 증가하고 이는 시차를 두고 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서 우리는 또 다른 자산가격의 거품을 경험할 수도 있다.

 

 

 

앞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잉여유동성을 도출했는데, 그 결과가 <그림 3>에 나타나 있다. 올해 들어서 우리 잉여유동성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이후로 소비 증가세가 위축되면서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있는 반면 통화공급은 상대적으로 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6년 이후의 데이터를 대상으로 분석해보면 잉여유동성은 주가에 3분기 정도 선행(시차상관계수 0.48)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말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잉여유동성이 크게 증가하고 주가도 1년에 걸쳐 3배 이상으로 오른 적이 있었다. 최근 정책 당국이 선제적으로 과감하게 정책대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로 미뤄보면 앞으로 잉여유동성은 더 늘어나고 시차를 두고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잉여유동성은 이론적으로 금리를 낮추고(유동성 효과), 경제성장률을 높이고(소득 효과), 물가를 상승시킨다(피셔 효과). 이를 보기 위해서 5변수(잉여유동성, 주가, 회사채수익률, GDP성장률,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구성된 벡터자기회귀모형(Vector Auto-Regression)을 구성하고 충격반응함수를 구해보았다. 그 결과가 <그림 4>에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잉여유동성이 증가했을 때 유동성 효과에 의해 단기적으로 주가가 올랐고 채권수익률은 하락했다. 특히 유동성이 증가한 후 주가는 7분기에 걸쳐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상승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편 소득 효과에 따라 유동성 증가는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피셔효과로 9분기 이후에는 물가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은 돈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경제가 신용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데이터를 대상으로 분석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간의 문제이지 경제변수는 항상 균형을 찾아가고 시장은 작동해왔다. 기본으로 돌아가서(Back to basics) 경제나 증권시장을 분석할 때이다.

 

2005년에서 2007년까지 우리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주식도 노후를 대비하는 투자 수단’으로 투자 문화가 변하면서 주식 시장으로 개인의 자금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개인의 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이 2004년 말에는 16.7%였으나 2007년 말에는 21.7%로 높아졌다. 또한 2004년 말 8조6천억 원이었던 주식형 펀드 규모가 2008년 8월 말에는 144조원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다. 돈의 ‘쏠림’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은행으로 자금 유입규모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주가 하락을 계기로 지난 7월 이후로는 다시 돈이 은행으로 들어오고 있다. 은행의 2년 미만 정기예적금이 2005~2007년간 11조원 증가에 그쳤으나, 올해 7월에서 9월까지 3개월 동안에 19조원이나 늘었다.

 

당분간 주식형 펀드보다는 은행 예금을 선호하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은행은 필요 이상으로 돈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돈을 은행이 그대로 가지고 가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은행은 먼저 안정성이 높은 채권 등 유가증권을 사고 그 뒤에 점차 가계나 기업대출을 늘릴 것이다. 그래서 돈은 돌고 본고에서 분석한 결과가 시차를 두고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