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산업 독주는 끝났나.’ 전 세계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을 이끌어왔던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의 움직임이 요즘 심상치 않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원가 절감에 나서고 있다.

선두업체 자부심은 이미 팽개친 지 오래다. 후발주자인 대만 기업의 추격이 워낙 거세고, 중국도 과감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언제든지 시장을 파고들 태세이기 때문. 대만 업체들의 출하 경쟁 때문에 실제 LCD 가격도 급락하고 있다.

LCD산업의 위기는 비단 국가경제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LCD단지가 위치해 일명 ‘맞수 지역’으로 꼽히는 경기 파주(LG필립스LCD)와 충남 아산(삼성전자)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흔들리는’ LCD산업이 지역 부동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 파주 · 아산 LCD단지 주변 상권 ■

기자는 지난해 5월 파주에 다녀왔다. 당시 파주는 그야말로 ‘부동산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파주 LCD단지 건설이 본궤도에 올라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7세대 라인 준공식에 맞춰 직접 단지를 다녀갈 정도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덕분에 단지 옆 인근 토지 소유주들이 적잖은 혜택을 봤다. 보상금 덕분에 한순간에 몇백억 원대 ‘돈방석’에 오른 주민들도 많았다. 단지 개발이 계속되는 한 부동산 열풍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달라졌다. LCD단지 옆 월롱역 주변은 원래 번화한 상권이 아니었던 터라 가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있던 음식점들도 문을 많이 닫았다. 부동산 규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LCD산업 불황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파주 LG필립스LCD단지 8세대 라인 투자가 지연되면서 주변 상권이 치명타를 맞고 있었다.

월롱역 앞 서울공인 최종훈 대표는 “LCD 공장 건설이 늦춰지면서 근로자들이 많이 빠져나가 한동안 잘되던 고깃집, 설렁탕집도 요즘은 매상이 절반으로 줄어든 형편”이라고 전한다.

LCD산업 부진에 따른 영향력은 부동산 거래에까지 미쳤다.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크게 오른 가격을 감수한 수요자가 꽤 있었지만 요즘은 매수 문의조차 없다. 최종훈 대표는 공장 부지에 대한 수요만 간간이 있다고 전한다.

“중소업체들은 아직 파주 LCD단지 개발효과를 믿고 있어 공장부지 수요는 꽤 있는 편이죠. 하지만 외지 투자자들 움직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허가가 쉽지 않은데다 토지거래허가 규제까지 겹쳐 웬만해선 투기에 나서기 힘들기 때문이죠. 거래도 급감해 터줏대감 중개사들도 한 달에 한 건 하기 어렵습니다.”
LCD단지 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파주 시내도 마찬가지. 파주신도시 개발 확대 방침만 거창하게 발표됐을 뿐 정작 파주 시내는 웬만한 신도시 상권 모습조차 갖추지 못했다.

파주 금촌역 앞에는 10층 규모의 아이맥스타워가 한창 건설 중이다. 멀티플렉스 극장과 병원이 함께 들어서는 파주 최초의 복합 근린생활시설이지만 정작 현지인들의 투자 열풍은 찾아보기 힘들다.

차재훈 아이맥스타워 영업2팀 차장은 “현재 파주 주민들이 멀리 일산의 편의시설을 이용하고 있어 수요가 충분할 걸로 예상했지만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다”며 “몇백억 원 이상 토지 보상금을 받은 현지 주민들도 실상 투자에는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전한다. 그나마 서울이나 일산 주민들의 문의가 많다는 평이다.

■ 파주는 음식점 매출도 줄어 ■

또 다른 LCD 메카인 아산 탕정 LCD단지 주변은 상황이 달랐다. 인근에 선문대가 자리 잡아 번화한 대학상권이 형성돼 있다. 대학생을 위한 PC방이나 당구장들도 있지만 주로 단지 근로자들을 위한 생삼겹살, 불고깃집 등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다. 수요가 많은 만큼 상가 가격도 꽤 높은 수준. 1층 일반음식점의 경우 점포당 임대료가 평당 80만~100만원 선이다.

‘공장부지 매입’이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보일 정도로 토지 수요도 여전했다. 길 옆 부지는 평당 150만~200만원, 일반 논밭은 50만~80만원에 거래된다.

물론 아산 LCD단지 주변 투자는 그리 만만치 않다. 해당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해야만 농지, 임야를 살 수 있기 때문. 땅도 허가 받은 대로 활용해야 한다. 매매 규제가 워낙 심해 외지인들은 거의 투자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특히 삼성에서 주변 50만평 이상을 단지개발 부지로 지정하고 보상을 시작할 움직임이다. 보상은 1년~1년 6개월 뒤에 본격화될 전망이다.

규제가 많은 만큼 요즘 들어선 가격 상승세가 주춤한 분위기다. LCD단지 주변 한빛공인 이윤나 실장은 “단지 주변 부동산은 가격이 많이 뛰었지만 평균으로 따지면 2년 전 시세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금 규제가 워낙 심해 웬만해선 투자하기 힘들죠. 보상이 모두 끝나고 아산신도시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야 개발효과가 가시화될 겁니다. 수원 삼성공장 근로자들도 점차 아산으로 내려 올 예정이라 그 이후를 바라보고 있죠.”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투기 열풍은 여전했다. 탕정농협 옆 황금공인 신영남 대표는 얼마 전 서울 기획부동산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충남 서천공단이 개발돼 장항선 서천역이 서울역보다 더 크게 개발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산지역 투자자들을 모아달라는 부탁이었죠. 요즘 이런 전화가 한두 통이 아닙니다. LCD단지가 뜨는데다 아산신도시까지 개발되면서 토지보상자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죠. 게다가 외지인들이 단지 주변에 온통 조립식 건물을 지어놓고 다세대 주택들을 사들이기도 했어요. 이전 택지를 받으려는 속셈입니다. 하지만 이미 규제가 강화돼 지금 들어오면 ‘이삭줍기’하는 거나 다름이 없어요.”
주변에 투기 열풍이 끊이지 않지만 실상 LCD단지 근로자들은 천안 시내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 아산 방면으로 들어서면 천안 신흥개발권 중 한 곳인 백석동부터 눈에 띈다. 이곳에서 10년가량 장사했다는 무영쌈밥정식 주인은 LCD단지 근로자들 덕분에 매상이 크게 늘었다고 말한다. “경기가 어렵다지만 먹을거리 장사는 근로자 수요 덕분에 잘되는 편이죠. 물론 평일만 잘될 뿐, 주말에는 사람들이 외지로 빠져나가 매출이 확 줄어요.”

■ ‘삼성이 천안·아산 먹여살린다’ 평가 ■

부동산 경기 침체 탓에 상가 거래는 찾아보기 힘들다. 백석동 벽산흰돌공인 관계자는 “보통 상가를 내놓는 사람이 80%, 그나마 장사를 이어가는 사람이 20%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거래되는 물건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삼성단지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했다. 벽산흰돌공인 관계자는 “삼성이 천안, 아산 경제를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천안 불당, 두정, 백석동 이렇게 세 곳에 LCD단지 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죠. 평소에는 인구 유입이 거의 없다 단지가 입주하면서 수요를 보고 아파트들이 대거 들어섰어요. 원래 천안 시내 아파트가 평당 평균 650만원 정도였지만 이곳은 이미 700만~800만원 수준을 넘어 섰죠. 앞으로 아산신도시가 건설되면 한차례 부동산 붐이 일어날 예정입니다. 지금은 초기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천안공설운동장을 지나 천안시청 방면으로 가면 천안의 또 다른 신흥개발지인 불당지구가 보인다. 27만평 부지 주변엔 아파트도 밀집돼 있어 배후수요만 2만여가구에 달한다. LCD단지 근로자 수요를 노리고 고층상업건물들이 10여개 이상 건설 중이다. 천안 시내에 터를 잡은 하나의 ‘소규모 신도시’ 느낌마저 든다.

■ 파주 vs 아산 발전가능성은? ■

경기 파주와 충남 아산은 여러모로 비교할 점이 많다. 중부권 거점도시인 아산신도시는 배방지구 111만평과 탕정지구 510만평, 그리고 탕정지방산업단지 125만평을 합쳐 총 746만평 규모. 파주신도시는 운정1~3지구와 교하지구(62만평)까지 총 597만여평 수준이다. 면적으로는 단연 아산이 우위다.

파주와 아산의 교통 편의성은 박빙이다. 아산의 경우 KTX로 서울과 천안 아산역까지 거리가 30분 정도로 가깝다. 2008년엔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연결되는 전철이 개통돼 수도권 접근성이 좋아질 수 있다. 조만간 경부고속도로에서 신도시로 진입하는 북천안IC까지 설치된다. 서울 출퇴근이 가능하지만 아직까지 비용과 이동거리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파주는 자유로와 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파주 운정신도시 주변에는 제2자유로 등 7개 도로가 신설된다. 신도시와 서울 상암동을 연결하는 제2자유로는 2009년 개통 예정으로 개통 이용 시 상암동까지 30~40분이 소요될 예정이다. 또한 경의선 복선전철화를 통해 2009년 상반기 성산~문산 구간이 개통될 전망. 이 구간이 개통되면 지하철 3, 6호선 환승이 가능해 서울로의 이동이 수월해질 수 있다.

■ 파주는 편의시설 부족, 아산은 공급과잉 약점 ■

기반시설에서도 차이가 난다. 파주는 도시 내 여건이 열악하지만 2km 떨어진 일산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대형할인점, 병원이 차로 10분 거리면 도달 가능하다. 이에 비해 아산신도시는 입주 초기 기반시설을 이용하는 데 다소 불편이 따를 수 있지만 향후 개발 가능성만은 충분하다. 택지개발지구로, 편의시설이나 행정기관이 체계적으로 들어설 계획이다.

양재모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사실상 파주는 서울, 일산의 기반시설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위성도시’ 효과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에 반해 아산은 이제 개발이 시작된 기업도시로, 발전과정에서 각종 기반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진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두 도시 모두 약점이 있게 마련. 우선 파주신도시는 개발면적이 당초 계획보다 두 배 이상 커지면서 주변지역 교통에 비상이 켜졌다. 인근 김포, 검단신도시 입주가 완료되면 교통대란까지 우려된다. 양재모 교수는 “교통 측면만 본다면 파주신도시가 우위에 있다”며 “다만 향후 상암지구와 함께 마포 미개발지구 개발이 확대되면 파주의 서울 접근성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과거 동부간선도로 혜택을 봤던 의정부 지역이 서울 노원, 창동의 아파트단지 개발로 인해 출퇴근 시간이 2배 이상 늘어났다. 양 교수는 “파주신도시 성공의 유일한 방안은 남북협력의 전진기지 역할이지만 현재 정치 상황으로는 어렵다”며 “파주는 심리적으로 서울에서의 거리가 화성 동탄지구보다 멀고, 접근지도 서울 강남이 아니라 강북”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비해 아산신도시는 아파트 공급물량이 많은 것이 약점이다. 아산신도시에서 지난해 말 마감된 1102가구 주공아파트 청약자 가운데 130여가구가 최근 계약을 포기했다. 천안, 아산지역 공급 대기물량도 올해만 2만5570가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삼성이 자체적으로 대규모 사원아파트를 짓고 있어 삼성 직원들의 청약 열풍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며 “게다가 서울, 수도권 집값이 계속 강세를 보일 경우 아산신도시는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 역시 “아산은 수도권 규제의 불똥을 맞아 미분양이 크게 늘고 있고 삼성전자와 협력업체 유입인구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인구 증가효과가 떨어진다”며 “게다가 주택 공급과잉 문제 때문에 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장기적으로는 아산에 후한 점수를 주는 전문가가 많다.

박병호 유은감정평가사무소 소장은 “단기적으로는 북서축상 소핵을 이루고 있는 파주가 유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수도권 남서축과 정남축이 만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아산권이 좋다”며 “아산은 전국 접근성과 함께 해상을 통한 중국, 동남아 접근성이 유리한 데다 규제에서 수도권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성장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 LCD산업 효과 비교해보니 】
LCD산업 흐름은 두 지역 경제를 좌우할 수 있다. 그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기업도시 역할 면에서는 아산이 파주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다. 삼성은 소니와의 제휴를 통해 8세대 라인 증설이 계속 진행 중이고 LCD산업 주도권까지 잡아 올해 전망 역시 긍정적이기 때문.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LCD업계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5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LCD 매출이 전년에 비해 33% 늘어난 148억달러를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아산은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공장 부지가 점점 넓어지고 있어 삼성전자뿐 아니라 관련 중소기업들까지 아산에 속속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

양재모 교수는 “사실 삼성은 화성 동탄에도 기업도시를 꿈꿨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다”며 “삼성의 계획대로 아산신도시에 첨단산업시설이 갖춰진다면 울산에 이은 두 번째 순수 기업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전한다.

물론 이 점은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산신도시 발전가능성이 너무 한 기업에 달려 있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LCD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지만 시장구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이 세계 1위를 지키고는 있지만 전체 시장점유율에서 대만에 점차 밀리고 있다. 상황이 악화된다면 삼성이 공장 증설과 산업단지 개발계획을 전면 수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 LCD산업 기반이 탄탄한 만큼 그럴 우려는 작다는 평가다.

파주 역시 비관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실제 LG필립스LCD는 지난해 실적이 좋지 못했고 공장 증설도 예상만큼 진행되지 못했지만 큰 위협요인은 아니라는 평가다.

이학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은 단연 세계 1위로 앞서가고 있지만 LG필립스LCD 역시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실적 전망은 긍정적”이라며 “지난해 LG전자가 대형TV사업에서 상대적으로 PDP에 치중하면서 LG필립스LCD가 수요처를 찾지 못해 공장 건설이 늦춰졌을 뿐 LCD산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힌다.

파주 시민들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도 한몫했다. 실제 파주에 LCD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주민들 기대가 높았고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랐다. 지난해부터 2009년까지 매년 공장을 한 개씩 증설한다는 계획까지 나오면서 주민들은 더 큰 기대에 부풀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 공장 하나 건설에 최소 2000명 인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총 1만명 고용 효과까지 기대하게 됐다. 하지만 그 시기가 다소 늦춰져 파주 부동산이 직격탄을 맞은 게 사실이다.


이학무 애널리스트는 “현재 파주 7세대 공장 가동률이 60%에 불과하고 8세대 라인 증설 준비도 이미 마친 만큼 두 라인을 기반으로 한 생산이 점차 본격화된다면 올해 LG필립스LCD 실적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