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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과 황교안, 풍수로 본 승자는… 조선일보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 |수맥과건강,풍수...

2020-03-2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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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과 황교안, 풍수로 본 승자는…

조선일보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0.03.21 03:00

[아무튼, 주말- 김두규의 國運風水]

총선이 다가와도 조용하다. 코로나19로 후보 간 치열한 '싸움'을 보는 즐거움이 사라졌다. 대면 선거운동이 줄어든 탓이다. 정치 1번지 종로는 이번에도 최고의 전장이 될 터인데 구경거리가 별로 없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이낙연과 황교안, 두 후보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총리까지 지낸 '개천의 용'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점이나 조용조용한 언행도 비슷하다.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현재 1위를 달리는 이낙연 후보가 우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근혜와 문재인을 대통령 만드는 데 기여한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의견이 다르다. 김 이사장은 최근 사석에서 필자에게 말했다. "팽팽한 접전이 될 것이고, 황교안 후보가 조금 앞설 수도 있다." 정치 달인의 예측이고 보니,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 속단하기 어렵다.

전남 영광에 있는 이낙연 후보의 부모 묘〈위〉와 경기 파주에 자리한 황교안 후보의 부모 묘. 조상의 무덤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있어 왔고, 후보 가족 전체의 의사 결정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김두규 제공

풍수적 관점에서 말할 수 있을까? 풍수적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선영·생가·거주지·사무실 등이 평가 기초 자료가 된다. 이 글에서는 공정한 풍수평을 위해 부모 선영만을 근거로 한다. 왜냐하면 다른 곳들은 거주 기간이 짧거나 변동이 심했던 반면, 선영(무덤)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있어 왔고, 후보 개인보다는 가족 전체의 의사 결정 흔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무덤을 풍수적으로 읽어내는 방법이 있나. 풍수사마다 의견과 주장이 다르지 않은가. 아니다. 누구나 동일한 방법으로 땅을 읽어낼 수 있다. 조선조 지관 선발 과목 '동림조담'은 말한다.

"뒷산과 앞산[주산과 안산]이 유정하고, 좌우 산들[청룡·백호]이 보좌하고, 사방을 빙 둘러싸 막아줌이 있고, 그래서 뭇 아름다움[衆美]이 모이면 그곳이 길지다."

이 가운데 '유정'과 '뭇 아름다움' 등은 주관적이다. 보는 이마다 달라질 수 있다. 독자의 의문을 간파한 '동림조담' 저자는 덧붙인다. "그 땅의 색(色), 모양[形], 소리[聲], 국세[勢], 방위[方], 뜻[意]을 살피면 '유정'과 '아름다움'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가운데 색(산과 물의 빛깔), 모양(산과 물 모양), 국세, 소리(바람과 물소리), 방위 등은 객관화될 수 있다. 문제는 언급된 '뜻[意]'이 무엇인가다. 땅 자신이 '뜻'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곳에 터를 잡은 사람(후손)들의 뜻(소망)이다. 집터나 묏자리를 잡는 사람이 그 터를 잡을 때 뜻이 무엇인가에 따라 터 잡기가 달라진다.

이러한 전제에서 이낙연·황교안 두 선영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이낙연 부모 묘는 전남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 277-12에 자리한다. 전북대 사학과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의 풍수사상'으로 학위를 한 유기상 박사는 평한다. "평야에서 땅 보기가 어려운데, 이곳을 자세히 보면 '유정'함과 '뭇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길지다. 좌청룡 힘이 좋아 명예로운 후손이 태어나기를 바란 뜻[意]이 있다." 은근하고도 지속적인 힘이 있다.

황교안 선영 지번은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1-9다. 대구·경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권근호 풍수사는 말한다. "명문가 청송 심씨 선영 아랫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이 예사롭지 않다. 복 많은 망자(부모)의 적선이 있었거나, 예리한 상지력(相地力)의 소유자(풍수)가 잡은 터가 분명하다." 순간적 힘을 드러내고 싶은 뜻[意]이 있고 그만한 역량이 있다.

두 곳 모두 지번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코로나가 발목을 잡지만, 이곳들은 한적하고 안전하다. 봄나들이도 좋고 좋은 기운을 받기에도 좋은 곳이다. 두 곳을 구경하면서 두 후보의 총선 및 대권 운명을 점쳐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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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0/20200320034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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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와 지역 특성 |수맥과건강,풍수...

2019-06-16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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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와 지역 특성
06/13/201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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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68.xx.xx.93

아리조나에서 아들이 살기 시작한 것이 거의 15년이 되어 간다. 대학을 졸업하자 바로 회사로 출근하다 시피하여 시카고에서 아리조나로 이사를 왔었다. 여름 방학에 인턴을 하고 한학기를 더 하고 옮겨 왔다.

1년 정도 지나서 집을 하나 사게 되었다. 

회사 직원 부인이 소개하는 것이라 몇개만 보다가 명당이 있어 장만했고 이번에는 조금 넓은 집으로 옮기면서 집을 소개 시켜주는 분이 100여개 이상의 집 주소를 알려주고 미리 풍수를 보면서 명당이 있으면서 수맥은 없는 집을 찾아서 방문하여 확인하는 식으로 보게 되었다.

대충 명당이 있는 집이 8%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지역은 사막 지방이라 수맥의 발달이 안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의뢰로 수맥이 있는 집이 많은 편이고 중간인 보통 집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아마 근처의 강이나 호수 근처에서 발달된 수맥도 있울 수 있고  오래전에 물이 많던 시기에 형성되어 지금은 지하에 물길만 남아 있는 것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하여간 일부 집은 수맥이 10-20개 이상이 될 정도로 많아서 

이런 쪽 집에서 살면서 수맥위에 침대가 놓여지면 만성피로(CFS)나 ME갈은 질환에 고통을 받게 될 것 같다.

미국 사람들은 침대를 두면서 지기나 풍수적인 측면은 따지지 않을 것이니 보기 좋은 곳에 두고 수맥전자파에 걸려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수맥이 여러개인 집이 많아 그런지 여기도 그런 환자가 좀 많을 것도 같다

수맥은 지나가는 위치에 따라 차이가 생기게 된다. 머리를 가로 질러 흐르는 수맥이 4-5개 있으면 정신징환을 포함하여 질병이 생기고 아이의 경우는 발달장애나 자폐 ADHD 등이 걸리게 된다. 또 가슴으로 지나가면 여기는 심장의 pacemaker가 있어 심장마비의 가능성이 높아 진다. 또 배로 지나면 소화기에 문제가 생기고 엉덩이쪽은 다낭성이나 불임 생리통 등의 영향이나 정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다리나 허벅지로 흐르면 보행장애가 생길 수 있다. 보통 머리와 배, 머리와 엉덩이, 배와 엉덩이ㅡ 배와 다리 등으로 2-3곳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직접 지나가면서 EMR(전자파)가 조사되는 곳도 있으니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한다.

머리에서 다리로 흐르는 경우는 몸 전체가 수맥이 직접 노출되어 좀 더 심하게 영향을 주게 된다.

직접 조사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통화를  하면 뇌로 전자파가 발산되어 심하면 뇌암까지 갈 수 있고 보통은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수맥인 경우는 머리에서 다리로 흐르면 전신이 직접 조사권이 되면서 가로로 흐르는 것보다 더 위험성이 높다.

일부는 십자형으로 머리에서 다리로 흐르는 수맥과 배를 가로질러 흐르는 수맥이 같이 가는 경우도 있다.

심자형은 증폭되는 이야기도 있다.

이유 없는 불면증이나 소화불량 등은 수맥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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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티 건축물 '내진 성능 보강' 추진…포항지진 대책 |수맥과건강,풍수...

2017-11-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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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티 건축물 '내진 성능 보강' 추진…포항지진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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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와 풍수 그리고 한국학 |수맥과건강,풍수...

2017-10-09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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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와 풍수 그리고 한국학

‘오늘의 운세’는 ‘한국 인문학의 위기’가 낳은 귀태(鬼胎)

글 : 김두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우석대 교수



⊙ 사주술은 송나라 때 지배학문이었던 성리학과 농업경제 발전과 관련
⊙ 원래 사주팔자는 고칠 수 없는 것이었으나, 명나라 이후 사주팔자도 고칠 수 있다는 이론 등장
⊙ 조선시대 ‘관학’의 일부이던 명과학(命科學)이 조선 망한 후 ‘길거리 동양철학’으로 전락

김두규
1960년생.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독일 뮌스터대 독문학·중국학·사회학 박사 / 전라북도 도시계획심의위원,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역임. 현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 저서 《조선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우리풍수 이야기》《풍수학사전》 《풍수강의》 《조선풍수, 일본을 논하다》 《국운풍수》 등

조선시대 명과학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오늘의 운세’를 봐 주는 ‘길거리 동양철학’으로 전락했다.
  ‘오늘의 운세’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주요 신문들이 싣는 ‘오늘의 운세’도 그 유령이다. 일요일자 신문은 배달되지 않기에 토요일자가 친절하게 일요일 운세까지 미리 실어 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단 하루로 사람의 운명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루하루에 매달릴 일이 아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말하였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任重道遠·맡은바 책임은 중하고 갈 길은 멂) 결코 서두르지 말 것!”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 옆에는 그의 좌우명이 적힌 팻말이 있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결코 서두르지 말 것.”
  《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말이다. 일본을 통일하여 새로운 막부를 연 이에야스가 금과옥조로 여긴 말이기에 새겨들을 만하다.
 
  문제는 ‘거리의 동양철학자’들이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조급증을 부채질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동양철학자’들은 크게 네 부류인데 대개 풍수·작명·관상을 겸한다.
 
  첫째, 사주 공부 후 개업하여 그 상담기록을 바탕으로 자기 홍보를 하려는 부류이다.
 
  둘째, 사주를 하나의 담론(‘동양학’의 일부로서)으로 삼아 전설적인 사주 대가들의 기행(奇行)과 기담(奇談)들을 과장・신비화하는 부류이다.
 
  셋째, 사주 공부를 위해 중국의 사주서적들을 번역·출판하는 부류이다. 사주 공부를 함과 동시에 그 책이 출간될 경우 ‘사주전문가’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
 
  넷째, 일부 학원강사·증권전문가·부동산전문가·대체의학자·일탈한 종교인들이다. 증권전문가들이 사주를 배워 고객들에게 돈이 되는 종목과 시기 등을 상담한다. 입시학원 강사들이 사주를 배워 수능과 대입을 앞둔 학부모들을 상대로 진로상담을 해주고 있다. 부동산업자들은 사주를 배워 고객들에게 투자해야 할 땅과 시기를 상담해 준다. ‘대체의학자’들은 사주로 사람의 체질과 질병을 상담하며 ‘약’을 팔기도 한다. 포교를 목적으로 사주를 이용하는 종교인들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에도 사주·풍수·관상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만큼 그렇게 많지 않다.
 
 
  운세와 운명
 
홍콩(왼쪽)과 일본의 점집. 우리나라만큼 많지는 않다.
  알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궁금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 왔다. 그리하여 운명에 관한 수많은 명언이 생겨났다.
 
  - 운명이란 못하는 짓, 안 하는 짓이 없다.
  - 운명은 화강암보다 더 단단하다.
  - 운명은 나쁜 놈이지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 인간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지 지혜가 아니다.
  - 운명이란 바람과 같은 것.
  - 운명은 자기 갈 길을 걸을 뿐이다.
  - 운명의 판결은 재심이 불가하다.
  - 그 누구도 운명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 운명에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 운명은 인간보다 더 상상력이 풍부하다.

 
  글머리에서 ‘운세’를 이야기하다가 ‘운명’으로 주제어가 바뀌었다. 운세와 운명은 어떻게 다른가? 운세(運勢)란 운(運)의 흐름[勢]을 말하고, 운명(運命)이란 운과 명(命)의 합성어이다.
 
《논형》을 지은 왕충.
  명이란 무엇인가? 2000년 전 중국의 지식인 왕충(王充·27~97년)이 명확히 해놓았다. 가난하여 책을 사 볼 수 없었던 그는 당시의 수도 낙양의 책방을 돌며 책이란 책은 모두 읽었고, 한 번 읽은 책은 그대로 암기를 할 정도로 천재였다. 그러나 배경이 없던 그는 벼슬길에서 터덕거렸고 가난에 절망하였다. 불우한 처지에서 그는 《논형(論衡)》을 쓴다. 《논형》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지식인들에게 읽힌다. 찬탄을 금치 못하는 명저이다.
 
  왕충은 여기서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부정한다. 자신보다 200여 년 앞서 살다 간 유학자 동중서(董仲舒)의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도 그는 거부한다. 여기서 음양오행설과 천인합일설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오늘의 운세’를 말할 때 사용되는 사주술의 근본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명론을 부정하였던 그가 명(命) 앞에 항복하여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사람들이 윗사람의 마음에 들거나 해를 입는 것은 모두 명(命)에 의한 것이다.    삶과 죽음, 장수(長壽)와 요절(夭折)의 명이 있고, 또한 귀천과 빈부의 명이 있다. 왕에서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성현에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머리와 눈이 있고 혈기를 지닌 동물이라면 명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빈천해질 명이라면 부귀하게 해주더라도 화를 만나고, 부귀해질 명이면 비록 비천하게 해도 복을 만난다. … 그러므로 부귀에는 마치 신령의 도움이 있는 것 같고, 빈천에는 귀신의 재앙이 있는 것 같다. 귀하게 될 운명을 지닌 사람은 남들과 함께 배워도 홀로 벼슬을 하고, 함께 관직에 나가도 혼자 승진한다. … 빈천의 운명을 지닌 사람은 이와 상황이 다르다. 어렵게 벼슬에 이르고 겨우 승진하며, 어렵게 얻고 일을 성취하지만 잘못을 저질러 죄를 받고, 질병으로 뜻하지 않게 재산을 잃게 되어 지녔던 부귀마저 상실하고 빈천해진다. … 따라서 일을 처리할 때의 지혜와 어리석음, 행실의 고결함과 비속함은 본성과 재질에 의하며, 관직의 귀천과 사업의 빈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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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연의 풍수기행] 수원 화성과 행궁 - 물 많은 水原… 보국지형 만나 탄탄대로 |수맥과건강,풍수...

2017-03-25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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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연의 풍수기행] 수원 화성과 행궁 - 물 많은 水原… 보국지형 만나 탄탄대로

 

정경연 2017년 03월 23일 목요일
         
 
수원 화성과 행궁

수원은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와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는 수원화성이 완성된 날인 10월 10일을 기념해 ‘도시의 날’로 정했다. 본래 수원의 읍치는 지금의 융건릉이 위치한 화산 아래에 있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팔달산 동쪽 기슭에 신읍을 건설하여 관아와 민가를 옮기도록 하였다. 당시 구읍에는 민가 221호에 676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정조는 10만 냥의 돈을 들여 백성들이 안심하고 이주할 수 있도록 이주대책을 세웠다. 그리고 매년 아버지 묘를 참배할 때마다 머물 행궁을 건립하였다.

행궁이란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거처다. 팔달산 아래는 국세가 크고 앞이 트여 도시 및 진영 터로 합당하였다. 정조는 이곳을 큰 도시로 육성하여 왕권강화와 개혁의 전초기지로 삼고자 했다. 정조 13년(1789) 행궁과 객사, 향교를 조성하고 경기관찰사와 수원부사에게 신읍의 육성책을 강구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때 정조는 백성들이 스스로 모여들도록 구읍보다 잘 꾸미고 생업에 재미를 붙이게 해주어아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수원 신읍에 사는 백성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주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거리 양편으로 점포를 내고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었다. 유생들을 이주시키기 위해서 수원에 호적을 둔 사람만 응시할 수 있는 과거를 보기도 하였다. 이러한 수원 육성책은 효과가 있어서 해남에 사는 사람까지도 천리 길을 마다하고 이사를 해오는 경우가 있었다.

수원의 신읍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자 정조는 축성을 결심하게 된다. 정조 18년(1794) 2월 영의정 채제공을 총괄책임자, 정약용을 설계자, 경기관찰사 조심태를 건설책임자로 내정하고 공사를 시작하였다. 팔달산을 주산으로 자연 지세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산성과 평지성의 특성을 잘 살렸다. 성의 둘레는 4,600보(5,744m), 높이 20척(4.9~6.2m), 축성 재료는 돌과 벽돌을 함께 사용하였다. 정조는 한 명의 백성도 강제 노역시키지 않고 동원된 모든 인부에게 매일 임금을 지급하였다. 이 때문에 각지에서 인부들이 모여들어 2년 6개월 만인 정조 20년(1796) 8월에 완공되었다. 화성 축성공사에 대한 내용은 『화성성역의궤』에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화성이 완공되자 정조는 성내 중심부가 한양의 종로처럼 번화하게 할 방도를 강구하였다. 그 일환으로 한양·개성·평양·의주·동래 등의 거상들을 이주시켜 상업을 활성화시켰다. 이주한 거상들에게는 인삼전매권과 같은 특혜를 주기도 하였다. 또한 농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둑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지를 확대하였다. 농업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농업연구소를 만들었다. 오늘날 서호저수지, 농촌진흥청,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등이 수원에 있었던 이유다. 농사는 주로 군인들이 짓도록 하였다. 새로 개간한 땅의 2/3는 장용외영의 장교·서리·군졸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를 기반으로 군대를 길렀다. 땅의 1/3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분배하였다.

화성 신도시 발전이 활발하게 추진되자 집권 세력인 노론 벽파 세력들이 강경하게 비판을 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정치자금 줄인 거상들을 빼가고,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외영이 2만의 군사를 보유하고, 경제적 실력을 갖춘 상인들이 정치세력화 되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노론 벽파들의 반격은 조직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정조를 뒷받침 해줄 정치세력은 힘이 약했다. 정국 주도의 한계를 느낀 정조에게 병마가 찾아오더니 재위 24년(1800) 49세의 나이로 숨지고 말았다. 이후로 수원은 오랜 침체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1967년 경기도청이 서울에서 수원시로 이전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다. 현재는 광역시급인 인구 120만 명의 거대도시로 자치단체 중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다.

수원은 속리산에서부터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진 한남정맥이 정기를 받는 땅이다. 한맥정맥이 수원 북쪽을 지냐는데 그 선에 있는 산들로 형제봉(448m)·광교산(582m)·백운산(562.5m)·오봉산(205m)·수리산(431.6m) 등이 있다. 행궁으로 내려오는 맥은 백운산에서 시작한다. 파장고개에서 금당골을 거쳐 경기도교육청·영산공원·화서문을 통해 주산인 팔달산(145.5m)를 만들었다. 이곳으로 동쪽으로 내려온 맥이 수원천을 만나 멈춘 곳에 행궁이 자리 잡고 있다. 앞에는 형제봉에서부터 내려와 만들어진 일자문성이 안산이 된다.

팔달산에서 좌우로 뻗은 능선은 내청룡·내백호가 되어 행궁을 감싸고 있다. 팔달산 뒤 서쪽으로는 여기산(105m)과 칠보산(232.6m)이 받쳐주고 있다. 앞쪽 동쪽에는 청명산(190m)과 용인의 석성산(471m)이 있다. 북쪽에는 조종산인 광교산과 백운산이 있고, 남쪽은 융건릉의 주산인 화산(108m)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듯 감싸며 보국을 형성하였다. 보국의 크기에 따라 도시의 크기가 결정된다. 수원은 앞으로도 더욱 성장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수원은 다른 도청소재지와 달리 큰 강을 끼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원천천·수원천·서호천·황구지천이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병점 부근 황구지천으로 모두 합수한다. 물이 풍부한 고장이므로 지명도 수원이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이므로 수원이 경제력을 갖춘 자족도시로 발전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중 수원천은 광교산과 백운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수원성 내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명당수다. 명당수가 자주 범람하자 정조는 버드나무를 심어 유천(柳川)이라 이름하고, 홍수·가뭄·폭염·수질정화·경관 등을 고려하였다. 팔달산에서 주변을 보면 수백 개의 산봉우리들이 모두 이곳을 둥그렇게 둘러싸 보호하는 형세다. 그 모습이 마치 꽃송이와 같다하여 정조는 수원부의 이름을 화성으로 바꾸었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지고나면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수원은 화려한 문화융성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해야 할 도시라 하겠다. 정조는 수원천이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것을 버들잎으로 보았다. 그래서 수원성도 남북은 길게 동서는 짧게 하여 버들잎 모양처럼 만들도록 하였다. 그러면 북쪽 모퉁이에서 세 굽이로 꺾이는 모습이 천(川)자 모양으로 유천을 상징한다고 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결국 화산과 유천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수원화성은 태평성대를 이루며 오랫동안 발전할 터라는 뜻이 된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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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연의 풍수기행] 청와대 불행의 역사… 풍수 탓인가 |수맥과건강,풍수...

2017-03-1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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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연의 풍수기행] 청와대 불행의 역사… 풍수 탓인가

서울 한양도성 산세와 청와대 터

정경연 2017년 03월 16일 목요일
          
  

한양도성의 산세와 청와대 터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의 역사는 2천년이 넘었다. BC 18년 백제 시조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지 올해가 2035년째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1394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이래로만 생각한다. 소위 ‘정도 600년‘ 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옛 이름인 한성이란 말은 본래 큰 성이란 뜻의 백제 도읍 이름이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서 서기 660년까지 678년간 지속된 왕조다. 이중 한성에 도읍이 있었던 기간은 3/4에 해당되는 493년 동안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475년 한성이 함락되고 제21대 개로왕이 사로잡혀 참수를 당하였다. 그러자 문주 태자가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겨 64년 동안 있었다. 제26대 성왕은 다시 도읍을 사비(부여)로 옮겨 122년 동안 존속하였다. 한성백제시대 제13대 근초고왕은 백제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다. 그는 북방으로 세력을 펼치려 하자 도읍이 한강 이남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재위 26년(371) 도읍을 지금의 한양인 한산으로 옮겼다. 그러므로 한양도성의 역사도 1600년이 훨씬 넘는다.

고려시대 한양은 남경으로 개경(중경)과 평양(서경)과 함께 삼경의 하나였다. 도선비기에 의하면 왕이 11월·12월·1월·2월에는 중경에 머물고, 3월·4월·5월·6월에는 남경에 머물고, 7월·8월·9월·10월에는 서경에 머물면 주변 36국이 조공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고려 왕실은 한양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왕들은 정치적 곤란에 처할 때마다 개경지기쇠퇴설과 남경천도론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외적의 침입이나 천재지변, 흉년 등으로 민심이 나빠졌을 때 왕은 그 책임을 개경의 지기가 쇠퇴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돌렸다. 그리고 남경으로 천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며 수습책을 내놓았다.

고려 제15대 숙종은 어린 조카 헌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그해 전국적으로 심한 가뭄과 병충해로 큰 흉년이 들었고 여진족들이 변방을 침략하였다. 그러자 왕위 찬탈에 대한 하늘의 응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숙종은 재위 6년(1101) 김위제의 상소를 받아들여 남경개창도감을 설치하고 남경을 건설하였다. 김위제는 남경을 삼각산(북한산) 남쪽, 목멱산(남산) 북쪽 사이의 평지에 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로보아 지금의 경복궁·광화문·종로 일대로 추정한다. 청와대 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곳은 평지가 아니다.

이후에도 남경천도론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제31대 공민왕이 강력한 개혁정치를 위해 남경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하였다, 제32대 우왕은 왜구의 침입과 복잡한 정치문제를 지력으로 해결하고자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가 5개월 만에 개경으로 돌아갔다. 제33대 공양왕 역시 약화된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한양으로 천도했다가 7개월 만에 되돌아갔다. 이처럼 한양은 이성계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적어도 1600년 동안 도읍지나 주치로서 역할을 해왔다. 그 중심에는 항상 풍수가 있었다.
한양도성은 한북정맥에서 비롯된 땅이다.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서남진한 한북정맥이 백암산·대성산·백운산·운악산·죽엽산·불곡산·도봉산으로 이어져 서울의 태조산인 북한산(836m)을 세웠다. 그리고 중조산인 보현봉(714m)과 형제봉(463m)을 거쳐 소조산인 북악산(342m)을 거쳐 청와대 바로 뒤편에 있는 현무봉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산세는 점차 순해진다. 전기에 비유하자면 북한산은 발전소 격이다. 보현봉은 1차 변전소, 현제봉은 2차 변전소, 북악산은 변압기, 현무봉은 흔히 두꺼비집으로 부르는 분전반이라 할 수 있다. 분전반에서 전등까지 전선이 연결되듯 현무봉에서 경복궁 근정전까지 맥이 연결되었다. 맥은 물을 만나면 멈추어 혈을 맺는다. 홍례문과 근정문 사이에 영제교라 불리는 금천교가 있다. 북한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경회루에 모인 다음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흐른다. 이 때문에 맥은 더 이상 나가지 못한다. 맥이 멈추어 기가 모인 곳이 근정전 자리다. 반면에 청와대는 맥이 멈추지 않고 경복궁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기가 모이지 않고 빠져나간다. 더구나 뒤의 북악산은 바위산으로 험하다. 풍수적으로 좋은 땅은 순한 생기가 모인 곳이다. 조선총독부터 오늘날의 대통령까지 하나같이 말로가 좋지 않았다.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청와대 이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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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운세 땅에서 읽다 |수맥과건강,풍수...

2016-02-20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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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운세 땅에서 읽다

기사입력 2016-02-19 11:27
 
백범 김구는 독립 후 상하이에서 귀국하자마자 젊은 나이에 익힌 관상과 풍수를 활용해 효창원 터의 가치를 알아보고 순국열사의 묘를 조성하는데 힘썼다. 독일문학박사이자 정통 풍수 계보를 잇는 김두규 우석대 교수에 따르면, 효창원은 연꽃이 물(한강)을 보고 고개를 숙인 형국이다. 효창원의 주봉은 연화봉. 꽃은 예술이자, 문화, 재물을 뜻한다. ‘문화대국’을 꿈꿨던 김구의 숙고였다.

풍수는 흔히 미신으로 여기면서도 현실에선 재물과 권력, 운과 연결시켜 믿는 이들이 많다. 최근엔 풍수인테리어가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풍수 가운데 한반도의 형세와 주산(主山), 수도 서울과 청와대 등 국운과 관련된 풍수에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국운풍수
김두규 지음
해냄

한반도의 형국을 얘기할 때. 메이지시대 군사자문으로 일본에 초빙된 메켈의 ’조선 비수론‘은 자주 인용된다. 조선이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와 같아 그 칼을 빼앗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일본의 조선정벌론에 힘을 실어줬다. 일본 풍수학자들이 기를 쓰고 독도를 자기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에도 이런 풍수가 자리하고 있다.

백두산을 한반도의 주산으로 여기는 입장에 저자는 부정적이다. 지나치게 차가우면서 뜨거운 백두산은 적절치 않다는 것.북방영토가 빠져나가면서 고착된 폐쇄적 주산론으로 고립주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책에는 단군조선 때 신지라는 사관이 쓴, 지금은 전하지 않는 역사서이자 풍수서인 ‘신지비사’에 나오는 “3개의 수도가 있어야 번성한다는 삼경설”과 관련, 후보지 제안이 눈길을 끈다.

대통령의 거처인 청와대와 관련한 지적도 흥미롭다. 경복궁의 후원, ’신들의 터‘에 해당하는 현 청와대는 폐쇄적 공간으로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며, 저자는 경복궁을 대통령궁으로 쓸 것을 제안한다.
우리 지형에 맞지 않는 수목장 대신 바위를 이용한 암석장 제안, 신라호텔 문 옆에 외로운 돌탑에 얽힌 풍수, 돈을 벌어다준 롯데월드부지 등 재벌가의 풍수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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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602190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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