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안단테)

전라도 강진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고향이 나오는,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한 50대 후반의 김말순 여사. 이제는 ‘후유’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 편히 노후를 맞이할 수 있으나, 그녀도 그리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고생으로 어우러진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평범한 회사원과 결혼하여, 단칸방 월세부터 시작해 아이들 하나 둘 키우고 집 늘려 가는 재미로 쓸 것 안 쓰고 먹을 것 안 먹고 쪼개고 쪼개서 저축하여 겨우 아파트 한 채 장만했더니, 이제는 나이가 되었으니 퇴직하라고 한다. 애들 키우고 집 장만하는 데 번 돈을 모두 투자했으니 당연히 노후 설계를 했을 리가 없지만, 막상 퇴직이라는 현실이 눈앞에 닥치자 아찔하고 앞이 깜깜한 것은 사실이었다. 김 여사는 88올림픽 개최 시점에 주식에 눈을 돌린 적이 있다.

남편 몰래 모아둔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면서 100만 원, 200만 원을 까먹게 되자, 원금을 찾을 생각에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두고 철저한 분석과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투자를 계속했지만, 끝내 알토란같은 2000만 원을 10년 새 모두 날려 버렸다. 그날로 신문과 경제 TV와 주식 관련 뉴스를 딱 끊고, 혹시 있을 주식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퇴직금을 굴릴 곳이 없더라

남편은 몇십 년 동안 고생하면서 일한 대가로 2억 5000만 원을 퇴직금으로 받아 왔다. 애들은 아직 공부 중이었고 다른 수입이 없어, 일단 퇴직금을 투자신탁에 맡겼다. 이자는 연간 10.5퍼센트. 지금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금리지만, 나오는 이자만으로 생활하자니 생활이 빡빡하고 정신적인 혼돈까지 오는 것 같았다.

김 여사는 한 해 생활비로 쓰려고 보통예금에 넣어두었던 2000만 원을 찾기로 했다. 10년 가까이 주식을 하다가 손을 씻고 이제 두 번 다시 주식에 눈길을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나, 당장 생활이 쪼들리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남편 몰래 찾은 2000만 원으로 다시 주식을 시작했다.

당시는 ‘바이 코리아’ 열풍이 서서히 불기 시작할 즈음이었고, 주가지수가 300에서 650을 넘나들 때였다. 김 여사가 거의 10년 동안 주식을 하면서, 돈은 벌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 철칙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주가지수가 최저점에서 올라가 최고점을 찍고 다시 내려오면, 최저점과 최고점의 차이의 3분의 1만큼 주가지수가 내려올 때 주식을 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저점인 300과 최고점인 650의 차이가 350임을 고려해, 350의 3분의 1인 120이 내려가 주가지수가 530이 될 때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2000만 원을 투자하여, 당시 주식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던 현대증권 주식을 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자마자 다시 주가지수가 출렁거리며 올라가 두 달이 채 못 되어 4000만 원이 되었다.

그러자 김 여사는 남편에게 그동안 주식에 투자했다고 고백하고 “도저히 투자신탁에 예탁한 퇴직금의 이자로는 생활이 안 되니, 허락만 한다면 주식을 하겠다. 다만, 5000만 원이 손해가 나면 바로 정리해서 더는 주식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퇴직금을 이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김 여사의 각오는 비장하다 못해 처절했다. 만약 퇴직금을 날리면 노후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도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여러 경제신문을 살펴보고, 각 증권회사의 사이트에 들어가 조사 자료를 검토하고, 장이 시작하기 전에 어떤 종목에 얼마만큼의 사자ㆍ팔자 주문이 있는지를 알아보는가 하면, 금리 동향과 원달러 환율을 확인하면서 관심 있는 상장회사 주식 담당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고, 말 그대로 피나게 공부하고 연구했다.

더욱이 새벽마다 미국 시장이 끝나면 그 소식을 가장 먼저 들으려고, 미국에 있는 친척에게 부탁해 집에서 팩스로 자료를 받아 보고, 미국 시장의 동향도 장 시작 전에 파악하는 노력도 빠트리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주식만이 한국을 외환 위기에서 건질 수 있다고 보고 외국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었기에 김 여사로서는 얼마쯤은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하고, 평소 눈여겨보아 두었던 포항제철ㆍ엘지화학ㆍ현대자동차를 선택해서, 한 해에 20퍼센트 먹겠다는 생각으로 2억 원을 투자했다.

나머지 5000천만 원은 ‘바이 코리아’ 열풍으로 후끈 달아오른 현대증권이 간접상품으로 팔고 있는 ‘나폴레옹 성장형’에 저축했다. 투자한 주식이 한 달이 안 되어 20퍼센트 넘게 수익이 나서, 이제는 주도주에 이른바 ‘몰빵’을 해야겠다고 판단해 엘지증권과 현대증권에 전액을 투자했다. 시대의 대세는 무서운 것이었다. 그 누구도 시대의 큰 물줄기를 꺾지 못했다. 두 달이 되자, 투자한 돈이 배로 늘었다.

간접상품에 투자했던 ‘나폴레옹 성장형’이 3개월이 지나 87퍼센트 수익률이 되자, 김 여사는 미련 없이 더는 기다리지 않고 해약했다. 간접상품에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준다면 운영 회사로서는 앞으로 다른 상품을 운용하기가 꽤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벌써 두 배 넘게 수익을 내고 있던 김 여사는 대형 우량주에 잠깐 들렀다가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형 우량주에 투자하여 목표로 했던 20퍼센트의 이익을 내고는 모두 정리하고 나왔다.

이제 집을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강남의 아파트를 보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종합주가지수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이를 보고 다시 주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남편에게 말했더니 극구 반대를 했다. 이때 김 여사가 주장하는 눌림목 이론에 남편도 다시 주식을 하는 것에 동의했는데, 눌림목 이론이란 앞서 말했듯이 주가지수가 최저점이었을 때와 최고점이었을 때의 주가지수 차이의 3분의 1이 넘게 주가지수 최고점에서 떨어지면, 더 내려가려고 눌러도 더 내려갈 수 없는 병목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눌림목이 되는 곳에서는 반드시 반등을 하기 때문에 매매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동안 기다리자 드디어 원하는 주가지수에 이르렀고, 약세장에서는 금융주가 어렵다고 판단한 김 여사는 좀 무겁다는 현대자동차를 주당 2만 1000원에 1만 주, 현대전자를 주당 1만 7000원에 2만 4000주를 사서 현대자동차를 주당 4만 5000원에, 현대전자를 주당 3만 5000원에 모두 다 팔고 나왔다. 곧바로 현대전자가 유무상 증자가 있다는 소식에 1만 8000주를 사서 유무상 증자를 받고 이를 팔아 1억 원의 차익을 얻게 되었다. 모든 주식을 정리한 김 여사는 이제 마지막으로 장기적으로 보겠다고 생각하고 삼성전자 1만 8000주를 주당 24만 원에 샀고,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31만 원이 넘어서자 이것도 모두 정리해 버렸다.

겨우 한 해 남짓 된 기간에 퇴직금 2억 5000만 원이 스무 배 넘는 큰돈이 되어 돌아왔다. 김 여사가 그동안 돈을 버려 가면서 주식시장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시작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가리는 것이었다.

시장은 채권에서 주식으로, 주식에서 부동산으로 흐른다

주식시장이 서서히 기울어 간다고 판단한 김 여사는 시장 흐름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주식에서 다시 부동산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에 이제 부동산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 사는 집이라고 해야 그리 재산 가치가 없는 것이었기에 집도 장만할 겸 이곳저곳 다니다가, 앞으로는 재건축할 수 있는 아파트가 돈이 되겠다고 생각해, 되도록 대지 지분이 많은 강남의 아파트를 찾기 시작했다.

대지 지분이 클수록 재건축을 하면 큰 평형의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여사가 가장 먼저 집을 산 것은 강남의 청실아파트였다. 1999년에 35평형을 3억 500만 원에 사면서, 부동산은 결코 도망가지 않는다고 확신해, 앞으로 5년 동안은 아파트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재건축하리라 기대했던 청실아파트의 재건축 문제가 점점 늘어지자, 불안한 김 여사는 2001년 11월에 재건축이 임박한 영동아파트 13평형을 1억 9800만 원 주고 샀다. 김 여사는 여러 가지를 살폈는데, 가장 큰 기준이 되었던 것은, 주변 시세와 차이가 나는 것을 고르는 것이었다.

김 여사는 이제 평생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도 2억 원을 주식 계좌에 입금해 놓고 날마다 두뇌 운동(?)을 한다. 욕심이 없고, 배짱에다 자금의 여력도 있다 보니 일희일비하는 전형적인 개미에서 벗어나, 게임을 즐기듯 주식 매매를 하고 있다.

전 재산을 투자했기에 하루 오르고 하루 내릴 때 조마조마하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주식은 이제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유 자금이 있으면 한 번쯤은 해볼 만하고, 다만 반드시 전체 유동자산 가운데 65퍼센트 넘게 투자해서는 안 된다.

비상시에 투입할 자금이 있거나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자금이 있다면, 주가가 오르길 기다리는 여유가 생기므로 손해를 보더라도 그리 크게 보지 않을 것이고, 이익을 남길 확률도 높다고 김 여사는 강조한다. 특히 주식 그래프는 꼭대기와 맨 밑이 한정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부동산은 꼭대기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음을 인식하면, 양쪽을 적절하게 이용해 자산 관리와 재산 증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젊어서 못 먹고 못 입었어도 자식들 공부시키고 굶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니 여한은 없다. 그리고 자식들이 자신들이 하고픈 대로 열심히 살아 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부모 때문에 고민하거나 부모가 자식 생활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좀더 나이 들어 애들을 독립시키면 김 여사 부부는 노인들만 모여서 사는 장소에서 따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하지 못한 것을 자식들이 즐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 것으로 만족하고, 자식들이 즐기는 것을 보기만 해도 행복하단다. 다만, 자식이 성공하고 높이 되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잘살기를 바랄 뿐이란다.

영동아파트는 재개발이 되면 25평형을 받는데, 현재 주변의 25평형 아파트가 5억쯤 되는 데 반해, 앞으로 추가로 내야 할 분담금이 8000만 원쯤 되니 지금 2억 원을 주고 산다 한들 5년 뒤에는 5억이 되어 투자 금액 대비 100퍼센트의 수익이 예상되므로 당연히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사들인 지 6개월이 지나자 시세가 4억 원으로 올라 초과 수익을 얻게 되었다.

2002년 중반부터 부동산값이 출렁거리면서 강남 부동산값이 엄청나게 올랐다. 특히 부동산값이 오르는 주된 원인이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대한 투기적 수요란 것이 알려지면서 정부에서는 재건축에 대한 제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재건축에 대한 규제가 있을 것이며, 재건축 허가 요건을 강화하고 작은 아파트를 짓게 하는 등 재건축에 대한 이점을 없애려 한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청실아파트는 아직 재건축이 어려울 것이고, 계속되는 정부의 규제 때문에 값이 더는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김 여사는 청실아파트를 팔아 버렸다. 그 대신 이미 재건축 승인을 받은 것은 상대적으로 값이 더 올라갈 여지가 많다고 생각해, 이미 재건축 승인을 받은 대치 도곡 제2아파트를 샀다. 2003년 1월이지만 가격은 이미 꽤 올라 있어 13평형이 7억 원이나 갔다. 그러나 김 여사는, 안 되는 쪽이 있으면 되는 쪽이 값이 오르기 마련이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투자했다. 결과적으로 크게 성공해 현재 시세가 8억 5000만 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