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부동산 업계 최고의 트렌드 세터는 강남 자산가들이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집값 땅값이 등락을 거듭하고, 히트치는 종목과 한물 간 상품이 엇갈린다.
‘큰손’ ‘복부인’ 등 ‘공공의 적’ 이미지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들을 닮고 싶다는 이가 크게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부동산 시장이 한산한 요즘, 이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겉으로 별 움직임이 없어 보이기에 궁금증이 더 크다.
세제 강화 이후 정말 몸을 사린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엘도라도를 개척하고 있는 것일까.

강남 자산가님들, 요즘 뭐하고 계세요?

‘부자들의 행보를 뒤따르라.’

외환위기 이후 사회 전반에 ‘부자학’이 뜨기 시작하면서 부자를 닮으려는 열풍이 거세게 일었다. 부자들의 노하우를 담은 책들이 잇달아 베스트셀러 왕관을 쓰는가 하면 몇몇 대학에선 부자학이 정규 과목으로 개설되기도 했다.

특히 재테크 세계에서 부자는 살아있는 교과서나 다름없다. 이들의 움직임을 잘 살피는 것만으로도 손해 보지 않는 투자가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부자들의 행보를 뒤따르는 게 개미들의 재테크 왕도’라는 말은 금언처럼 통하고 있다. 어느 대상이나 닮으려 노력하는 만큼 가까워진다는 진리가 재테크에서도 유효한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부자’로 범위를 좁히면 다소 이중적인 잣대가 공존하는 게 현실이다. 여전히 ‘큰손’ ‘복부인’이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일 만큼 비하하는 풍조가 여전해도, 그들의 부동산 투자 비결만큼은 ‘최고의 정보’로 우대받는 현상이 그렇다. 돈을 좇는 황금만능주의를 개탄하면서도 내심 남보다 한발 앞서 투자처를 발굴하고 남보다 높은 수익을 원하는 게 인지상정이 된 셈이다. 비하와 선망이 공존하는 가운데, 이유야 어찌됐든 이들을 닮고 싶어 하는 개미들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강남 부자들의 관심은 어디에 몰려 있는 것일까. 연초부터 부동산, 주식 등 재테크 시장이 썩 밝은 게 아니기에 궁금증이 더하다. 주식시장의 경우 지수 1500을 향해 진군 중이지만 중국 등 대외 변수에 휘둘리며 등락을 거듭하고 있어 연초 기대만큼 듬직하진 못한 상황이다. 급성장 중인 펀드 시장 역시 해외 펀드의 들쭉날쭉한 지역별 실적으로 곱지만은 않은 상태다.

특히 부동산 시장은 거래 자체가 꽁꽁 묶였다고 할 정도로 정체된 모습이다. 무엇보다 악재가 수두룩하다.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 원가 내역 공개를 주요 내용으로 한 주택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예정돼 있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로 돈줄이 거의 막힌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최근에는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주택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올라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최고 60%까지 오른 곳도 있어 ‘세금 폭탄’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고 있다.

이처럼 돈 맥 흘러가는 방향이 딱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강남 부자들의 동향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더구나 이들의 선행 투자는 향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곤 했다. 그동안 강남 큰손들은 특정 지역, 특정 상품의 투자 붐이 불기 전에 움직여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에 발을 빼곤 했다. 한두 발 더 빠른 투자가 이들의 특기인 것이다.

예를 들면 외환위기 이후 서울 주상복합, 충청권 토지, 철거 대상 가옥 투자 등으로 ‘작전지’를 옮겨간 게 대표적이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개미들이 어김없이 몰려들어 끝물 직전의 반짝 시장을 형성하곤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물’을 먹은 이들도 부지기수다. 도시계획 변경 등으로 철거 대상이 되는 가옥을 매입해 택지개발지구 입주권을 받는 투자 방법의 경우 기획부동산까지 개입해 최근까지 기승을 부렸다. 상황이 이러니 강남 큰손들과 보조를 맞춰 투자할 수 있다면 재테크에선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강남 사람들, 세금 고지서를 받아 보면 ‘어이쿠’ 하게 될 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 강남 부자들은 세제 강화가 현실이 된 이후 투자(또는 투기) 의지가 위축돼 있을까.

취재를 위해 만난 ‘강남 큰손 아줌마’ 2명과 금융권 PB, 부동산 컨설턴트 등의 말을 종합하면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암중모색’ ‘정중동’이라면 모를까, 세제 강화 등 부동산 압박 정책에 충격을 받은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0년의 부동산 투자 경력을 자랑하는 김명자 씨(삼성동)는 “과거에 비하면 운신의 폭이 많이 좁아진 건 사실”이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부동산이 재미없다, 호시절 다 지나갔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기 사업을 하며 여러 부동산에 동시 투자하고 있는 오미영 씨(가명·대치동) 역시 “요즘처럼 거래가 뜸한 때일수록 급매물이나 저평가 물건 건지기가 수월하다”면서 “몇 배의 시세 차익이 아니더라도 쏠쏠하게 남길 수 있는 투자 대상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잠수 중인 자금은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규제가 아무리 심해지고 정부가 ‘불가’ 코멘트를 연신 날려도, 강남 큰손들은 여전히 재건축 이슈에 관심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개포 주공이나 압구정동 현대, 한양과 같은 재건축 대상 단지는 언제나 관심 대상”이라면서 “몇 달 동안 매수를 보류해 두었던 이들이 언제 들어가야 할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파트가 최고야”

특히 개포 주공은 강남 큰손들의 ‘로망’이나 다름없다. 투자 금액이 커 웬만한 중산층은 넘보지도 못하는 수준이지만 이들에겐 늘 주시의 대상이다. 오미영 씨는 “40평형대 배정이 가능한 16평형의 가격이 지난해 여름 수준인 7억 원대로 떨어진다면 매수할 용의가 있다”면서 “추가 부담금을 감안해 총 투자 금액을 10억 원 정도로 보지만 5~10년 후 20억 원을 웃돌게 될 게 틀림없으니 확실한 투자처인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 수도권의 싼 아파트들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른바 ‘남들 다 오를 때 안 오른 아파트’ ‘주변에 비해 싼 저평가 아파트’다. 김명자 씨의 경우 저평가 아파트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린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자신의 ‘프로젝트 팀’ 멤버들과 함께 상계동 일대 소형 아파트를 집중 공략했다. 16~25평형 아파트를 차명으로 몇 채씩 사들였는데 바로 다음 달인 10월부터 전세대란과 함께 서울 외곽과 수도권 아파트 값이 뛰기 시작했다.

김 씨는 “두어 달 만에 5000만~8000만 원씩 오른 것 같다”면서 “모두 전세를 끼고 사서 투자비가 얼마 안됐는데, 오름폭만으로 투자비를 상쇄하고도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런 투자가 또 가능한 저평가 단지나 지역이 어딘지 열심히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보를 귀띔해 달라는 요청에 “시흥, 안산 지역의 인구 증가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있고 광주 오포리와 태전동도 유심히 관찰 중”이라고 말했다.

PB센터에서도 아파트는 여전한 ‘화두’다. 타워팰리스 앞의 한 금융사에 근무하는 H부장은 “CMA MMF 등 초단기 상품에 자금을 묻어 두고 마땅한 부동산 상품이 나오길 기다려 투자하겠다는 수요가 여전히 많다”면서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믿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H 부장은 또 “관심 대상은 강남 지역과 분당 용인 등 서울 남부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에 집중돼 있다”면서 “PB센터 고객은 여러 의견을 청취해 주식 펀드 부동산 등에 분산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큰손’과는 투자 패턴이 구별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동쪽 북쪽 ‘안 쳐다봐’

강남 큰손들의 공통점은 ‘남쪽’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북쪽과 동쪽을 ‘싫어’한다. 투자처로서 북쪽이나 동쪽은 아예 괄호 밖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미영 씨는 “솔직히 강북 가서 살래? 용인 가서 살래? 라고 물으면 우리는 용인 간다고 대답한다”면서 “강북 뉴타운 등 개발 호재가 아무리 많아도 강남 사람들 생각은 늘 그렇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동서로 구분한다면 단연 서해 쪽에 개발 호재가 많다”면서 “도시 확장이 어느 편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이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봐도 정답이 서쪽 아니냐”고 말했다. 공장 이전, 인구 증가 동선 등의 조건을 살피면 동쪽보다는 서쪽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들이 관심을 두는 지역 역시 남서쪽에 집중돼 있다. 오 씨는 “남쪽으로는 판교 동탄신도시 수혜를 고루 입을 수 있는 광교신도시, 용인 흥덕지구를 에이스로 꼽는다”면서 “송도신도시 인근의 청라지구는 서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성남 재개발은 뜨거운 관심사다. 현재 성남은 수정구 중원구 등에서 진행 중인 도시정비사업으로 도심 구시가지 대부분이 재개발 대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까운 판교, 도촌 등의 분양 이슈로 이미 지분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10~20평형대 다세대주택을 5채 이상 매입해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명숙 우리은행 PB사업단 부동산팀장은 “2010년까지 순차적으로 개발에 들어가는데, 5채 이상 투자하는 경우는 대부분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하는 것”이라며 “전세를 끼고 할 경우 5억 원 미만으로 투자금을 맞출 수 있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강북이나 다른 지역에선 전혀 눈여겨 볼만한 게 없느냐는 질문에 오미영 씨는 “저평가돼 있다는 측면에선 남양주 별내지구가 괜찮을 것 같다”면서 “하지만 호평, 평내지구 등은 이미 많이 올랐기 때문에 급매물 정도나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김명자 씨도 오미영 씨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다만 강북에 대한 의견은 다소 달랐다. 김 씨는 “강북 재개발 구역 중에서 뉴타운 수혜를 볼 수 있으면서도 아직 평당 1000만 원 이하로 살 수 있는 곳이 꽤 많다”면서 “잘만 고르면 좋은 물건을 싸게 건질 수 있어서 소액 투자자에게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가 말하는 재개발 지분은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으로 개발되는 중소규모 재개발 단지다. 그는 “은평뉴타운에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만큼 최대한 당첨을 노려보겠다”면서 “분양가가 낮을 것이란 예상에 강남 투자자도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이들은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 잡아주기도 했다. 바로 ‘아파트 규제가 심해지자 상가 투자로 돈이 몰린다’는 이야기다. 오 씨는 “상가 투자로 성공한 사례를 거의 보지 못했다”면서 “내가 아는 강남 자산가들 중에서 상가에 관심 있는 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출처 : 한경비지니스, 2007.3.28)